아침에는 해가 나왔댔다. 고마웠다.
사람들이 들고나기 쉬우라 그러나 보다 싶었다.
그제부터 들어와 있던 유설샘네 다섯 식구며 주말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을 보내고
달골에 올랐다.
엊그제 아침뜨락에 심은 세 그루 광나무와 같은 곳에서 나온 한 그루가 또 들어왔다.
다른 집으로 갔다가 그 쪽 형편과 맞지 않아 이곳으로 마저 온.
마침 걸음을 옮기며 만나는 광나무들을 지나 한 그루 더 있으면 좋겠다 싶은 곳에 심었다.
들어가면 보려던 일만 보고 나오는 물꼬 공간이 아닌.
간 김에 ‘옴’자 사이 풀을 긁다.
잔돌을 같이 긁어내다.
옴자의 눈썹모양 끝 쪽에 그 돌들을 모은다.
탑이 되거나 의자가 되거나 할.
들머리 계단 아래쪽을 두른 무궁화 둘레도 풀을 뽑아주었다.
“그런 불안이 있어요.
잘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내가 놓쳐서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일곱 살과 초등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말했다.
“난 당신네 가정 보면서 그런 생각 들던데-충분하구나 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하고 평화로운 정서가 아닌가 싶어.”
이보다 더 무엇이 좋을 수 있을까 싶더라.
한 벗과 차를 마시면서 들먹인 어느 수련 프로그램 이야기가 있었다.
젊은 날 한 번쯤 가고팠으니 그때는 참가비가 비싸 망설였던.
그러다 세월 흘렀고, 이제는 어느새 이곳에서 수행일정을 진행하고 있네.
그래도 늘 아쉬움 있었다, 그곳에 대한.
벗을 보내고 책방에 앉아 잠시 그곳 자료를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벗에게 문자를 보냈네.
‘우리가 차 마시면서 나눈 이야기더라.
내 식으로 표현하면,(궁극적으로 그곳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도)
“충분하다”, “결국 사는 일이 제 마음 넓히는 일이더라.”
뭐 그렇군.
오늘 그곳 수련 참가비 60만원 벌었으이.’
그렇겠다. 우리가 마음공부 하는 목적이 무에 그리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그 길이 또 꼭 특정 어디를 가야만 얻는 것이겠는가.
물꼬에서 살아가는 일이 곧 수행이라.
그곳에서 얻는 것 또한 평화일지라.
예서 넘칠 만큼 하고 사는 일이 그거 얻자고 하는 일 아닌가.
그러니 굳이 또 가긴 어딜 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