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를 지나며 따는 호두를 올해는 아직 나무에 매달아두었더랬다.

추분도 지나며 이번 주쯤엔 털리라 했지만

나흘내리 바깥에서 물꼬로 예술명상 수업을 들어오는 일정에 또 밀렸다.

오늘에야 둘레 풀을 정리하고

나무를 흔들거나 긴 대나무로 툭툭 호두나무를 치거나.

학교 아래 밭에 것을 주운 다음 학교로 들어와 간장집 곁의 두 그루도 딱 딱 쳤다.

학교아저씨가 간장집 해우소 지붕에 올라가서 다시 탁, .

떨어진 호두를 줍는 동안,

 

달골에서는 상담공부하는 이들이 모였다.

예술명상수업을 진행한 나흘 동안

뒷배로 온 점주샘과 사이집에서 묵었고,

묵은 흔적들을 치울 때

그리 멀지 않을 곳에서 명상공간을 꾸리고 사는 이와 연락이 닿았다.

물꼬에 두세 차례 왔으나 날 보지 못하고 헛걸음만 했던 이라.

마침 오늘 다녀가도 좋겠네 했다.

국수를 내고 차를 달이고 물꼬 투어라.

아침뜨락을 걷고 사이집으로 들었네.

두어 해는 더 준비해야 공식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이 되겠지만

집중명상센터 사이집예비모임쯤이었달까.

마당에 볕이 좋았다.

둘러친 편백이, 경사면 아래로 측백이,

아직 높은 키는 아니나 이 맘 때는 아직 잎 푸르르 옴팍하게 마당을 깜싸고.

빨랫줄에 하얀 매트도 널린.

거기 볕이 고솜하게 닿고 있었다.

잔디 위에 요가매트도 꺼내놓고, 내 놓은 긴 의자에도 앉았다.

내놓은 스피커 안에서 음유가수가 노래를 절절히 부르고 있었다.

저 치자나무, 저 노래를 듣고 심고 싶었더라니까.”

90년대 후반 서로 스쳤다가 다시 10년 전 같은 공간에서 아주 잠깐 보였다

비로소 오늘 한자리에 앉다.

물꼬에서는 꽤 흔한 일,

인연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마치 늪지대처럼 발이 빠지는 곳이라고들 하는.

그래서 또 이곳을 더 정성스레 꾸려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794 2023. 5.24.물날. 먹구름 사이 / 크레인에 달린 컨테이너 옥영경 2023-07-05 379
5793 2023. 9.27.물날. 부슬비 옥영경 2023-10-07 379
5792 2024. 1. 3.물날. 눈 / 계자 사전 통화 옥영경 2024-01-08 379
5791 2020. 1.24.쇠날. 잠깐 볕 옥영경 2020-03-03 380
5790 2020.10.23.쇠날. 흐림, 상강 / 일단 책상에 가서 앉기 옥영경 2020-11-29 380
5789 2021. 6.22.불날. 소나기 옥영경 2021-07-12 380
5788 2023. 9.16.흙날. 비 옥영경 2023-09-30 380
5787 2020. 5.10.해날. 비가 묻어 있는 흐린 날 옥영경 2020-08-08 381
5786 2020 여름 청계 여는 날, 2020. 8. 1.흙날. 저녁답에 굵은 빗방울 잠깐 지나 옥영경 2020-08-13 381
» 2020. 9.26.흙날. 상현달로도 훤한 옥영경 2020-11-15 380
5784 2021. 7.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1-07-26 381
5783 2021.10.31.해날. 맑음 / 지적담론은 어디로 갔나 옥영경 2021-12-15 381
5782 2021.12.30.나무날. 눈과 바람 옥영경 2022-01-11 381
5781 2022. 4.10.해날. 맑음 옥영경 2022-05-07 381
5780 2022. 6. 9.나무날. 낮 4시부터 소나기 40분 옥영경 2022-07-06 381
5779 2022. 9. 3.흙날. 실비 내리는 오후 / 9월 집중수행 여는 날 옥영경 2022-09-17 381
5778 2022.12.31.흙날. 흐림 옥영경 2023-01-08 381
5777 2023. 3.22.물날.맑음 옥영경 2023-04-11 381
5776 2020. 9.14.달날. 맑음 옥영경 2020-10-10 382
5775 2021. 3.10.물날. 맑음 옥영경 2021-04-22 38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