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찬 흐린 아침이었다.

햇발동의 해건지기.

전통수련을 한 뒤 대배 이어지다.

10학년 팥쥐는 자기 할 양을 미리 선을 긋고 그만

대배가 다 끝나기를 기다리며 앉아 명상하고 있었더라.

11학년 콩쥐도 조금 더 해보지만 백배에 아직 이르지는 못하고.

조금 더 자신을 밀고 가도 좋을 듯.

그건 좀 더 애를 쓰는 태도일 테니까.

가벼운 아침밥상을 물리고

팥쥐는 햇발동 거실에서 온라인수업 안으로,

 

콩쥐랑 아침뜨락을 걷다.

대나무기도처 안으로 들어가자 빙빙 도는 하늘이 들어왔고,

한 귀퉁이로 낮달이 걸렸다.

농기구 컨테이너로 가서

모자부터 챙겨 쓰고 장갑을 끼고 삼태기를 꺼내고 호미와 방석을 챙기고.

침묵도 함께하는 밭매기이지만

나누는 이야기가 또 얼마나 많은지.

아니, 왜 교장실 청소를 아이들에게 시키는 거예요?”

그러게. 교무실 청소는 샘들이 하고 교장실 청소는 교장샘이 해야지.

제가 쓰는 공간 제가 청소해야지.

하라면 해야는 줄 아는 때도 있겠지만

때로 의심하고 묻고 알아야.

10학년 때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는 콩쥐의 생각들이 흥미롭다.

 

낮밥 설거지를 끝낸뒤 팥쥐가 먼저 책방으로 건너가 온라인수업을 시작하고,

제습이 가습이들을 콩쥐랑 각각 한 마리씩 끌고 산책하다.

두 마리를 한 번에 데리고 다녀도 그리 무리하게 끌어 땡기지는 않는 습이들이지만

한 사람에 하나씩 데려가니 저들도 편해했네.

 

저녁 밥상을 차리는 동안

아이들은 또 쌓인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기고,

수제비반죽을 했다. 내일 점심에 먹으려지.

미리 해서 숙성시켜두려.

우리 집 아들이 어릴 적, 아이는 빵을 먹고 싶거나 핏자가 멋고 싶으면

저가 그리 반죽기 노릇을 하고는 했다.

다시 아들들이 반죽을 하고 있네, 하며 찡해하다.

 

부엌에서 음식을 할 때면 간을 보거나 하며 한 입 얻어먹는 게 또 재미가 있지.

불에 올려진 뭔가를 내리기 전 찬거리를 다듬는 아이들에게 한 입 먹인다.

오늘은 주전부리거리가 있었는데,

그 부스러기를 털어 아이들을 멕였다.

양손이 다들 젖어 있어 마른 손이 나밖에 없기도 했지만.

흠씬 가까워진 사이가 된 듯한.

시간이 우리들 위를 그리 흐르고 있었다.

 

저녁이면 거실에서 모여앉아 책을 읽는다.

예전 학교 독서모임에서 읽은 것을 지금 다시 읽으며

그땐 활자만 보았다면 나이 먹어 읽으니 감동이 있다고도 했다.

같은 책이어도 그렇지.

언제 읽느냐, 그러니까 내 인식의 변화에 따라 읽기도 달라지는.

별 변하지 않은 내 외양이어도 내 어제와 내 오늘은 다른 나일지라.

또한 동일한 나.

 

아이들의 말들 속에서 자주 즐겁다.

오늘은 동생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동생들한테 말하고 있을 때 꼭 엄마아빠가 저들한테 말하듯이 하는 순간이 있다고.

결국엔 너도 알 거다, 나중에 알게 될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아니고는

자신들의 말이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그렇겠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쌓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나이를 먹고 이해하는 넓이가 달라지곤 하니.

 

저녁상을 물리고 차로 이동하는 달골,

오늘은 계곡 다리 앞에 차를 두고 걸어 오르다.

오늘부터 사흘 다리 보수공사 중.

난간도 달릴.

다리 양쪽 끝이 불안해보여 민원을 넣었고, 보수하기로 결정이 났던.

우리집 아들 어릴 적 제도학교를 다니지 않던 아이와

겨울밤이면 같이 걸어 오르내리던 길이다.

역시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길.

사내 애들과 지내고 있으니 아들 생각을 자주 하게 되네.

 

책을 읽고 하루재기.

위탁 5일차(하루를 온전하게 다 움직인 건 4일차인)밖에 되지 않는데도

소소하게 배우는 게 많단다.

시간을 이리 꽉꽉 잘 채워 알차게 쓰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없지도 않다고.

여기서 아이들에게 주려는 걸 콕콕 잘 집어 잘 받는 아이들이었더라.


얘기했던가, 오랫동안 찾던 얇은 동화책을 책방에서 찾아냈더라고.

아침뜨락의 달못이 그 책 제목에서 따와 이름이 된.

분도출판사에서 30년 전에 나왔던.

문장이 가물가물해서 챙겨야지 한 게 벌써 여러 해.

드디어 다시 들여다봤네.

깊은 산속 외딴 오두막에서 양을 치며 사는 복돌이,

보석이 가득찬 달못에서 몇 알 캐 팔러나갔다가 임금의 눈에 띄고

임금과 신하들은 그 달못에 가지만

이제 그만 나오라는 복돌이의 말을 듣지 않은 채

해가 떠서 그만 눈이 멀어져버려 달못 바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더랬지.

마지막 페이지의 아름다운 문장들....

또 한번 복돌이는 아름다운 보석을 몇 개 주워와

양마다 하나씩 목고리에 매달아 주고

그래서 다시는 양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지.

그 빛이 밤에도 양들이 있는 곳을 알려 주어.

나머지 보석들은 창틀에다가 얹어 두었습니다.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그 광채가 어찌나 밝은지

복돌이는 밤이 이슥하도록 장작을 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 여우가 찾아올 때에는 멀리서부터 벌써

복돌이의 오두막집이 보였습니다.’

 

아침: 달걀국과 인절미

낮밥: 야채라면

저녁: 카레밥과 미소된장, 샐러드, 쥐치포볶음, 묵은지볶음, 줄기김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427 2020.10.19.달날. 맑음 / 대안교육백서에서 옥영경 2020-11-22 13
5426 2020.10.18.해날. 맑음 옥영경 2020-11-22 10
5425 2020.10.17.흙날. 맑음 / 천천히 걸어간다만 옥영경 2020-11-22 11
5424 2020.10.16.쇠날. 뿌연 하늘 / 원정 일수행 옥영경 2020-11-22 11
5423 2020.10.15.나무날. 맑음 / 좋은 취지라고 해서 옥영경 2020-11-22 9
5422 2020.10.14.물날. 흐림 옥영경 2020-11-22 9
5421 2020.10.13.불날. 청아한 하늘, 그리고 절반의 흐림 옥영경 2020-11-22 10
5420 2020.10.12.달날. 흐리다 비 두어 방울, 살짝 해 옥영경 2020-11-22 11
5419 2020.10.11.해날. 흐릿 / 흙집 양변기 작업 시작 옥영경 2020-11-22 11
5418 2020.10.10.흙날. 맑음 / 새 책 출간 계약서 옥영경 2020-11-18 40
5417 2020.10. 9.쇠날. 구름과 바람 옥영경 2020-11-18 32
» 2020.10. 8.나무날. 가끔 해를 가리는 구름 옥영경 2020-11-18 27
5415 2020.10. 7.물날. 맑음 옥영경 2020-11-18 33
5414 2020.10. 6.불날. 맑음 옥영경 2020-11-18 25
5413 2020.10. 5.달날. 맑음 옥영경 2020-11-15 49
5412 2020.10. 4.해날. 어둑하다 비 몇 방울 다녀간 오후 / 4주간 위탁교육 여는 날 옥영경 2020-11-15 52
5411 2020.10. 3.흙날. 흐림 옥영경 2020-11-15 42
5410 2020.10. 2.쇠날. 도둑비 다녀간 옥영경 2020-11-15 45
5409 2020. 9.29.불날 ~ 10. 1.나무날. 절반 흐림, 약간 흐림, 살짝 흐림, 흐린 사흘 옥영경 2020-11-15 37
5408 2020. 9.28.달날. 맑음 옥영경 2020-11-15 3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