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강경하게 시간을 바투 쓴 하루였다.

엊저녁 늦게 잤으니 그리하면 힘들 걸 알아차리라고?

그런 의도도 적잖이 있었네.

슬쩍 510분 뜸을 들이기도 하는 아침 깨우기를

오늘은 칼같이 정해놓은 시간에.

23시면 끄자던 방의 불인데, 자정이 다 되도록 아이 방에서 통화 소리가 흘러나왔던.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무슨 세계대회가 있는 요새라

동생이랑 이야기가 길었다지.

 

아침뜨락을 걷다가 아가미길에서 발에 채우는 돌들을 오늘은 지나치지 못했네.

언제 하루 시간 내서 돌 좀 치우기로 하였는데,

오늘 내친 김에 좀 할까 하였다.

아이는 아고라 쪽과 경계를 이룬 측백 사이들에서 돌을 주워 나르고

난 길 끝에서 사각으로 경계탑을 쌓기 시작하다.

돌 일은 퍽 힘들다.

이것으로 일수행 시간을 따 쓰면 퍽 고단할 거라.

나머지 시간은 밭으로 들다.

오전 세 시간을 일수행으로 두지만 아침뜨락을 걷고 실제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09:30부터,

게다 11:30이면 일을 끝내니 꽉 채워서 한다 해도 두어 시간.

그것도 썼던 도구들 정리하고 갈무리하고 하면 그만큼도 안 되는.

오늘은 그 시간은 꽉꽉 다져서 채웠네.

- 아구, 허리야.

아이도 제 허리를 툭툭 치는 날이었더라.

 

오늘은 낮에 차를 달이기로 했다.

교과학습에 대한 이야기.

각 과목별 접근법에 대한 이야기도.

공부도 무식하게 무작정 하는 게 아니지.

국사만 해도 맨날 앞부분만 하고 또 하는.

우리는 자주 책의 앞장만 너덜너덜해지도록 하는.

결심해서 책을 열고, 얼마 못가 주저앉고,

다시 마음 좋고 책을 열고, 또 흐지부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 안내하다.

 

저녁밥상에는 비빔밥이 올랐다.

고기를 매우 좋아하고 야채를 잘 먹지 않는다는 아이.

그 야채를 여기선 곧잘 먹는 그라.

- 집에서도 이리 해주면 좋잖아요.

혹 남이 제 엄마 흉이라도 볼까 얼른 말을 덧붙이는 아이.

- , 그렇다고 안 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 아무렴 해주지 않기야 할까.

음식 맛도 어디에서 누구랑 먹는지에 따라 또 달라지는.

여기는, 이 멧골은, 움직임이 많고 동선이 긴, 그리고 귀한 것 많은,

뭐나 맛있지 않을 수가 없기도.

, 기도하고 차리는 밥상이지 않은가 말이다.

 

저녁밥상을 돕는 아이는 오늘도 고구마줄기 벗기기.

줄기김치도 있고 볶음도 있지만

말려서 묵나물로도 잘 먹을.

굵은 소금을 풀어 10여분 적셔놓았더니 벗기기가 수월타.

그게 먹힐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거 마저 다 하자고 속도를 내고 있더라.

오늘 꺼내놓은 것을 다 하고 먹은 저녁밥.

 

저녁밥상에서 물꼬 인연들이 입에 올랐네.

아이랑 밭을 매며 차를 마시며 함께 걸으며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눈다.

잘 듣는 귀를 가진 그라.

공감력이 아주 뛰어나기도 한 아이.

멧골에서 함께 움직이며 얼마나 든든한 동지가 되고 있는지.

오늘은 휘령샘과 정환샘이 (이야기에)등장했네.

어느새 서른 전후가 된 그들.

무언가 필요한 것을 눈여겨보고 다음 걸음에 그걸 챙겨오는 거며

제 삶을 살아가기도 쉽지 않을 이 시대 젊은이들이

물꼬에 어떻게 마음 쓰는지 그간의 일들을 전하는데,

당장 지난여름 일정에서만 해도

30년 가까이 쓴 철제 선반이 망가졌을 때 그걸 또 고쳐 쓰겠다는 나를 보며

뒤에서 휘령샘과 정환샘이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으려하던 풍경에서부터...

말을 하며 그때의 감동이 다시 덮쳐 내 코끝이 시큰해졌더라.

- 여기 사는 샘의 동력을 알 것 같아요.

아이가 말했다.

물꼬, 참 대단한 곳인 것 같단 생각을 한다지.

그래, 그래서도 내가 열심히 살 수밖에 없노니.

 

날마다 멧골 깊은 밤에 우리는 같이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럴 때면 집안일을 챙겨서 하곤 하는데,

이번 일정에는 같이 앉았다.

오늘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하나 들었는데,

너무 극찬을 들어버렸던가, 내겐 그리 가슴을 울리지는 않더라.

문학서를 읽는 능력이 퇴화했을지도.

아니면 20대에 읽었다면 달랐을지도.

지금 내게는 닿지 않았던.

책이란 게 언제 읽느냐에 따라 또 다를.

물론 뒤늦게 탕 하고 남는 마음이 있기는 하더라만.

 

지난 학기 한 제도학교에 지원수업을 가 있는 동안

그곳의 교장 사택에서 머물렀다.

물꼬에서 자가운전을 하며 출퇴근을 하기에는 다소 먼 거리였다.

다음 주 그곳에 이틀 특강을 가야 한다.

한 달에 걸쳐 할 강의를 두 주에 몰아 하기로 했고,

다시 사흘 안에 내리 수업을 하기로 했다가

다시 조율되었다. 이틀 동안 하루 5차시씩, 그러니까 1교시부터 5교시까지 이어 하기로.

이번에도 사택에서 묵으라는 교장샘의 전화가 들어왔다.

비밀번호 그대로예요.”

하지만 위탁교육 기간, 물꼬를 그리 비울 수는 없다.

저녁에는 돌아와야.

고마웠다.

 

남도의 집안 어르신의 전화가 들어왔다.

한해 두어 차례 남도에서 나는 것들을 찬거리로, 또 반찬을으로 보내오는데,

지난 주 이미 왔더랬다.

마침 위탁교육 중이라 하였더니

생선이며 좀 더 보내겠다는 연락.

잠시 들어왔다 나간 하얀샘도 아이들 먹이라며 만주를 내려주고 갔네.

물꼬 일정에는 안에서 애쓰는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의 부모도 먹을거리를 보내고,

멀리서 여러 어른들이, 가까이서 이웃이 마음을 전하나니,

아이들은 그 모든 온기를 타고 자란다.

 

아침: 단팥빵과 모카빵과 주스

낮밥: 카레

저녁: 비빔밥과 미소국, 호박나물과 무채와 콩나물과 고사리, 달걀 후라이, 그리고 물꼬 요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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