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8.흙날. 벼 베다

조회 수 1502 추천 수 0 2005.10.10 01:10:00

2005.10.8.흙날.갬. 벼 베다

이제 날마다 뛰는 열 바퀴,
어른들도 죄 나와서 같이 뛰지요,
가끔 장순이(진돗개)도 달려 나오고.

"낫이랑 장갑 챙겨 감나무 아래서 만납시다!"
장화 신고들 나와 벼를 베러갑니다.
자정이 넘어가도록 퍼붓던 비가 고맙게도 접어주었지요,
받아놓은 날 잘 쓰라고.
이 식구가 다 들어가서 벼를 눕혀도 어차피 탈곡하러 콤바인이 들어와야 하니
꼭 손이 필요한 곳만 하자 했습니다.
무릎 앓이를 하느라 아예 앉다시피 하려고
입고나간 스키복을 아이들이 보며 재밌어라 합디다.
그래서 논으로 가는 길은 스키장의 한 슬로프가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하였지요.

구월이라 늦가을이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느냐
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한다 온 산 단풍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 밑 노란 국화 가을 빛깔 뽐낸다 구구절 좋은 날 꽃부침개로 제사 지내세
절기를 따라가며 조상 은혜 잊지 마소 보기는 좋지만은 추수가 더 급하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습한 논은 베어 깔고 마른 논은 메 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 '농가월령가' 가운데서

세 다랑이 논 닷 마지기,
기계가 일하기 좋게 뺑뺑이 돌며 너댓 그루씩 벼를 넘깁니다.
"애들 다 어데 갔어?"
마을 어르신들이 묻습니다.
"다 있어요. 나락땜에 안보이는 거예요. 하나씩 부르면 톡톡 튀어나와요."
류옥하다가 얼른 대답하며 낫 베던 손을 멈추고 일어납니다.
"저기도 있지요, 조오기도 있지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저 여섯!"
그래도 아이들이 몇 안되지요.
"진짜 어데들 갔어?"
멀리서 다른 이가 질문을 받습니다.
"좋은 학교 찾아갔지요."
"하기야 농사짓고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
가을날의 안부들이 정겹습니다.
그런데 빗방울이 듭니다.
"날궂이 하네, 이런 날 애들이 벼 벤다니까."
상문이 아저씨가 나락을 널러 나왔다 놀리십니다.
그런데 말 떨어지기 무섭게 비가 그만 지나가버렸지요.
"봐요, 애들이 벼 벤다니까 오던 비가 가잖아요.
우리 덕에 벼 말리는 줄 아셔요."
"허허, 그러게..."
"얘들아!"
어느새 희정샘이 참을 들고 나옵니다.
"일루들 오셔요!"
상문이 아저씨네도 함께 앉고
김정옥 할아버지도 지나다 한입 물고 가시고
이장님도 지나다 인사를 건네고
읍내 나가던 이웃 양계화님도 차에서 내려 맛을 보고 갑니다.
"바지런히 하자, 아님 남은 이들이 힘들어."
다시 논으로 들어갔지요.
낫 여섯 개를 애들이랑 어른들이 짝을 이뤄 돌려가며 합니다.
시간이 딱 맞춤이었지요, 다해놓고 옷 갈아입으니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빙 둘러 쓰러진 벼를 자꾸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저 아이들 얼굴 좀 보셔요...

곧 읍내 춤추러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 신우재에서 잠시 운전의 피로를 푼다고 쉬는데,
아이들은 등나무 아래서 도란거리다 곁에 있는 수돗물로 잘 놀고 왔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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