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11.불날. 날 참 좋다! 그리고 딱 반달/ 상처를 어이 쓸지요

아침마다 하는 뜀박질의 마지막 바퀴는 흐뭇합니다.
도형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돌기로 한 바퀴에 꼭 못미치는데,
다 뛴 아이들은 둥글게 서서 좋은 하루이기를 비는 인사로 마무리를 한 뒤
그를 앞세우고 마당 한 바퀴를 같이 돌아 가마솥방으로 들어간답니다.
서로 그들 생에 좋은 친구들이 될 게다 싶어 마음 푹해지지요.

역사 시간은 고대 국가에 이르렀고
우리는 고조선 건국신화를 들먹이며 <환단고기>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광명개천'해서 '홍익인간'하고 이화세상을 이루는(재세이화) 국가이념을
우리 학교 이념과 잘 견주며(?) 얘기들을 나누었더랍니다.
소소하게 재미들이 있지요.
지나간 낡은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이야기가 늘 같이 덧입혀져
더 재미가 나는 모양입니다.
그건 다시 우리 미래의 방향을 잡아줄 테지요.

하는 가락이 무섭다 하지요.
아이들 검도가 그렇데요, 검도샘도 없이 알아서들 연습을 했답니다,
서로 기억을 짜맞춰가며.
등꽃들을 한 차례 더 그리는 한국화는 정말 제법이지요.
"많이 는 것 같애요."
저들끼리 흐뭇해하며 의젓하게 붓을 놀립니다.
같이 공부를 들어오는 희정샘의 그림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다지요
(어, 우리 희정샘도 한 그림 합니다요.
다만 애들은 등꽃이 두 번째지만 희정샘은 그때 연구년 공부를 나가 있었거던요.).
"한국화 때는 우리는 꾸준히 하고 희정샘은 가끔 하는데 우리가 능숙해서 잘되었다.
판굿이나 운동장 뛰는 거나 검도나 배우는 게 다 그런 모양"이라고,
나현이가 지난 주 날적이에 쓰고 있었지요.

아이들은 김치 담을 준비를 오후에 했습니다.
알타리무를 뽑아와 다듬었지요,
오늘부터 한 주를 머무르는 김현덕 엄마가 맛있게 담아주실 거라며.

대전의 판암초 교장이셨던 홍사숙샘이 지난 8월로 퇴임을 하시고
지난 봄에 이어 다시 나흘을 일손 보탠다 오셨습니다.
귀농을 준비하고 또 아이를 2006학년도에 보내려는 김점곤님도
한동안 예서 머무르겠다십니다.
오늘 알았는데요, 김점곤님과 홍사숙님이 물꼬를 알게 된 계기를 서로 나누셨는데,
홍사숙샘은 조선일보에 났던 전면기사를 말씀하고 계시더이다.
세상에, 그게 언젠지요, 97년 가을께일 겁니다.
그 기사가 오랜 품앗이 형길이 삼촌과 물꼬가 맺은 첫 연이기도 하였지요.
김현덕 엄마가 대해리 들어오는 저녁 버스 시간과 맞질 않아
열택샘이 황간까지 마중을 나가면서 어른 판굿이 쉬게 되었는데
그 덕에 방문자들과 차 한잔 나누었지요.
머물다 가는 이들이 전날 밤
가마솥방에 모여 곡주를 나누거나 작은 밤참을 들기도 하는데
어째 두 분은 그럴 기회가 없었댔지요.
반달, 꼭 절반의 달이 뜬 고운 밤에 좋은 분들과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을이 이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리 깊어가는 게지요.
아침 저녁 찬바람이 들면 문득 가슴의 앙금들이 풀풀 풀려 일어나기도 하는 가을이지요.
나이 스물 때, 까마득한 대선배가 나타나 가끔 그런 노래를 불렀더이다.
"갈색으로 물들인 높은 하늘을...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래요,
누군들 곡진한 사연이 없겠으며 누군들 상처가 없겠는지요(하기야 더러 없기도 하더만요).
자신의 깊은 상처가 다른 이에게 극악한 상처를 입히는 흉기가 되는 걸
참 많이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자신의 잊히지 않는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되는 것도 보았지요.
알게 모르게 우리 가슴에 새겨졌을 생채기가
되살아나 다른 이를 아프게 하는데 쓰이지 않기를,
다른 이의 삶을 외려 풍성하게 하는데 쓰이길
간절히 바라는 가을 길목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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