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옴자에 꽃처럼 심은 배추를 몇 포기 잘랐다.
멧돼지가 헤집어놓은 데서 살아남은 것들이었다.
지난 10월 크레졸을 곳곳에 달아놓은 이후 아직 그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된장을 풀고 썬 청양고추 몇 개 던져놓고 배춧국을 끓였다.
해날이면 낮밥을 먹은 뒤 습이들 산책을 시키고
반찬들을 주루룩 해서 대처 식구들 편에 보낸다.
오늘도 번호 매긴 찬통들이 가방에 실렸다.
일어서야 할 때!(‘일을 해야 할 때’ ‘글을 써야할 때’의 다른 말이기도.)
그렇다고 널부러져 누웠던 것도 아니고
때마다 밥상 차리고 틈틈이 흙벽 보수 작업도 하고(오늘도!) 닥친 일상을 건사했지만
역시 책상에 앉는 일이 아니면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11월 1일 4주 위탁교육을 끝내고 아주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의 한 주를 자판은 두들기는 일 없이 보낸.
오늘은 마지막 보루였던 벽이 내 쪽으로 훅 밀리는 듯한,
마치 내 삶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위기감까지 일었다.
써야겠다!
계자에서 아이들이 모두 자고 샘들이 둘러앉아 하루 갈무리를 할 때면
마지막 안내는 언제나 이렇다; 아무 생각 없이 죽은 듯이 자고 아침에 깨울 때 ‘싹!’하고 일어나시기.
더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몸으로 자신을 깨워내라는 말이다.
샘들한테 계자는 잠과의 사투라고 할 정도로 잠이 모자랐다.
이곳의 원시적 불편을 교사들 몸으로 메우는.
그것은 날마다 나 자신을 일으키는 주문이기도 하다.
아, 일어나는 일은 어찌 그리도 습이 아니 된단 말인가.
우리 뇌는 불편하고, 무섭고, 어려운 일은 피하는 쪽으로 설계되어 있다지.
사실 바라는 것을 얻는 건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하다고 해서 그게 쉽다는 말은 아니다.
‘익숙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것을 깨고,
어렵고 불확실하거나 두려운 것들을 하는 것.’
우리는 사실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을 위한 정보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아침이 자주 그렇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자고 만다. 그게 쉬우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뇌가 절대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과학자들은 그것을 행동에너지라고 부른다.’
오늘 어느 귀퉁이에서 읽은 글귀들이었다.
그렇다. 잠을 깼을 때, 혹은 알람이 울렸을 때 싹하고 일어나기!
더 자는 건 안 돼, 미루는 것도 안 돼! 그냥 싹!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정말 단순하다.
자신에게 강제로 하게 할 것!
우리 뇌가 자동으로 선택하는 쉬운 길을 깨야.
자신을 강제로 불편하게 하기,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기.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언가 이뤄지길 바라지 말 것.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어떻게든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