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 9.달날. 맑음

조회 수 347 추천 수 0 2020.12.15 22:53:14


 

아침뜨락 옴자에 꽃처럼 심은 배추를 몇 포기 잘라다

어제는 배춧국을 끓여냈고

오늘은 배추무침을 밥상에 올렸다.

멧돼지의 발길에도 가을가뭄에도 겨우 목숨붙인, 봄동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꼭 먹어야만 할 것 같았던.

 

새벽은 영하로 떨어지는 여러 날.

여기 책상에 이렇게 앉은 게 그리 일이었더라, 지난 한 주가.

이제는 어떤 일을 하고 난 뒤 회복주기가 길다.일정과 일정 사이 긴 시간이 필요한.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일정을 끝내고 바로 이어 거뜬히 새 일정에 돌입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이레가 걸렸다.

물꼬 누리집에 들어가 부랴부랴 흙집에 양변기 놓았다는 소식도 올리고.

거참... 시골마을에 처음 들어온 흑백TV도 아니고

양변기 겨우 둘 들였다고 소문이라니...

 

일하는 것도 없이 보낸다지만

그래도 그 사이 끼니마다 밥상을 차려내고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청소하고

낙엽을 쓸고 간간이 흙집 보수를 위한 흙을 이개고 붙이고.

여기 일이 흔히 그렇지만 얼마쯤 하고 다음 날 또 얼마쯤 하는 식인 것은

흙덩이 무게가 아래로 내려앉는 시간, 그리고 천천히 굳어가는 시간을 위한 것.

오늘도 체를 친 흙과 썬 짚과 5%의 시멘트를 물에 개어

한 덩이씩 던졌다.

기둥과 기둥 사이 대나무를 가로로 뼈대삼아 걸쳐가며 채웠던.

 

그런 속에 저녁 밥상을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기 전 습이들 산책을 시켰다.

여러 날 으르렁거리던 그들의 싸움이 있었다.

저러다 하나는 죽고 말겠다 싶을 만치 뒤엉키더니,

나중에는 힘이 안 되니 소리 소리 지르며도 싸우더니,

오늘은 드디어 제습이와 가습이 싸움의 결판이 났더랬다.

가습이가 드러누워 네 발을 다 들고 한참을 정지해있었다.

그야말로 두 손 두 발 다 든.

일어나, 집에 가자!”

그제야 일어서는 가습.

제습이도 쉽지는 않았는지 의기양양해하지는 않았다,

본래 그의 성정이기도 하고.

그러게, 어째 맨날 까불대더라니! (제습이에게)싸움을 걸어?”

가습이에게 몇 마디 더하려다 말았다.

충분히 우울하고 힘든 그였으니까.

재봉틀도 꺼냈네.

가습이 망가진 리드줄에 고리를 새로 달았고,

제습이 줄은 여기저기 터진 부분들을 단단히 이어주었다.

 

지난주 보건소로 오라는 마을 방송이 있었다.

가지 않았다.

성인의 예방접종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에 입장을 바꾸다.

아이들을 여전히 맞을 이 겨울이고,

하여 코로나와 구분을 위해 결국 맞기로 결정한.

보건소에 전화 넣으니 아직 약이 남아있다 했다.

학교아저씨와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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