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한 기록이 무에 그리 의미가 있는가 싶다가

그것마저 없다면 학위를 얻는 것도, 대단한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도 아닌

(밥노동 일상노동 같은 것이 대우받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밥노동 일상노동이 얼마나 허망한가 싶은.

예컨대 이런 기록마저 없다면

먹어치워 사라져버리는 밥노동은 얼마나 쉬 무가치해질 것인가.

나는 움직였는데, 처음처럼 설거지가 남겨지고 처음처럼 먼지가 쌓이고.

그 속에도 이런 기록조차 없다면 나는 했으나 남은 게 없을.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일상노동을 기록하나니.

 

학교 부엌 스토브 위의 후드를 닦았다.

화구가 네 개인 영업용 스토브이니 후드도 갓이 그 화덕만한 사각에

팬과 모터도 그 만큼 큰.

몇 년 만에 한 번 하는 일.

기름때가 아주 두툼하게 붙은.

어제 떼 놓은 후드를 1차로 학교아저씨가 닦았고,

청소용 싱크대에 기름범벅의 고무장갑과 수세미가 담겨 있는 아침이었다.

세탁세제와 뜨거운 물을 부어 비비니 금세 언제 그런 일 있었냐는 듯 말간 얼굴들.

오후에 2차로 닦다.

세제를 조금 푼 뜨거운 물에 걸레를 담가 짜서 닦고 또 닦고.

물을 끓여가며 반복하다.

모터 쪽은 물이 들어갈세라 조금조심.

성에 차지 않아 면봉을 가져와 닦아보지만 그것도 고양이털 정도의 시늉.

모터를 더는 어쩌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끈적이는 것들은 다 닦은!

 

이 모든 것이 계자 준비일 것.

닥치면 빨리 해내야 할 일이니

마음은 얼마나 바쁘고 또 얼마나 바삐 팔을 휘둘러댈 것인가,

이맘 때 슬슬해야 무리하지 않을.

또 닥친 다른 일에 밀려 나중에 하자 하면 한 계절 혹은 두 계절이 훌쩍 지나기 일쑤.

딱 지금 하기 좋은 일, 지금 해야 할 일.

보는 이야 그저 처음처럼 그런 거려니 해서 표는 나지 않으나

한 나는 아는 일!

 

다음은 후드 갓.

양철로 만들어진 것.

지난번에 위쪽은 철수세미로 박박 밀었더랬다.

높은 바(bar)의자에 올라 다리 하나는 스토브 위쪽으로 살짝 걸친 자세에

팔을 아주 높이 뻗어야 하고

닦아내는 물을 작은 대야로 받쳐가며 하지만 물방울이 팔 안으로, 또 아래로 떨어지기도.

그래도 밖은 나았지 안쪽을 올려다보며 닦으려니...

기름때가 방울방울로 몰려 아주 바짝 달라붙은.

내가 해볼까?”

아래서 뜨거운 물을 갈아주고 의자를 옮겨주던 기락샘이 그랬지만

묻힌 손으로 내리.

안쪽은 낼 오전 손을 더 대기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574 2008. 8.25.달날. 맑음 옥영경 2008-09-15 1318
5573 2007. 2.16.쇠날. 맑음 옥영경 2007-02-22 1318
5572 2005.12.14.물날 / 오정택 선생님 옥영경 2005-12-17 1318
5571 10월 27일 물날 맑음 옥영경 2004-10-30 1318
5570 2월 빈들 닫는 날, 2009. 2.22.해날. 눈 옥영경 2009-03-07 1317
5569 127 계자 여는 날, 2008. 8.10.해날. 맑음 옥영경 2008-09-07 1317
5568 2006.4.21.쇠날 / 달골 안택굿 고사문 옥영경 2006-04-27 1317
5567 2012. 4.12.나무날. 오후 흐림 옥영경 2012-04-17 1316
5566 2009. 3.15.해날. 맑음 옥영경 2009-03-28 1316
5565 9월 1일 물날, 저농약 포도를 내놓습니다 옥영경 2004-09-14 1316
5564 [바르셀로나 통신 4] 2018. 3.19.달날. 잔비 내리는 밤 옥영경 2018-03-20 1315
5563 2011.11.13.해날. 날이 개 거닐기 좋은 옥영경 2011-11-23 1315
5562 2006.11.18-9일.흙-해날. 싱싱한 김장배추 같은 날 옥영경 2006-11-22 1315
5561 2012. 4. 2.달날. 밤비 / 천산원정길, 잘 다녀왔습니다... 옥영경 2012-04-07 1314
5560 146 계자 사흗날, 2011. 8. 9.불날. 종일 비, 산마을에 물소리 꽉 차다 옥영경 2011-08-28 1314
5559 2008.10. 8.물날. 맑음 옥영경 2008-10-20 1314
5558 봄날 나흗날, 2008. 5.14.물날. 맑음 옥영경 2008-05-23 1314
5557 2008. 3.26.물날. 또 눈발 잠깐 옥영경 2008-04-12 1314
5556 2007.10. 4.나무날. 비 내리다 갬 옥영경 2007-10-13 1314
5555 2005.10.5.물날.바깥이 더 따뜻해서 옥영경 2005-10-07 131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