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의 한밤이었다.
겨울90일수행에 잠깐이라도 동행하기로 한 이가 있었으나
이 엄동의 시간에 서로 불편이라고 다음 기회를 엿보았다.
간밤 10시부터 펑펑 내린 눈이었다.
가끔 깨서 내다보면 한 장면만을 보듯 같은 시간이 멈춰 있었다.
지치지 않고 새벽 5시까지 내렸던 눈.
몇의 연락들이 들어왔다.
눈 소식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포털 메인뉴스에 영동에 내린 9.2cm 눈 기사가 실렸고
그것을 92로 읽은 까닭들이었다.
덕분에 서로 나쁠 건 없으나 다소 서먹거리기도 하는 관계 하나도
그런 소식으로 또 마음을 전하기도.
물꼬로 보내는 곳곳의 관심과 지지에 늘 감사함.
수행을 한 뒤 햇살 퍼지도록 기다렸다.
아침 10시에야 사이집-햇발동-달골 대문까지 오가는 길을, 오가는 길만 눈을 쓸었다.
다른 식구들도 길을 이었다.
학교아저씨는 큰길에서 달골로 갈라지는 지점에서부터 다리께로
차 한 쪽 바퀴만 다닐 만한 오솔길을 만들며 쓸어오고,
하얀샘도 계곡 다리께에서 희망의 등대까지,
거기로부터 기숙사 들머리인 달골 대문 앞 주차장까지는 내 몫이었다.
얼면 고생이라.
차는 고사하고 사람도 다니기 어려울.
아니나 다를까, 해 기운 사라지자마자 벌써 꽝꽝 언 멧골이라.
이 혹한에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의료진들은 어쩌고 있을 거나.
홑겹 천막 속에서 옷 네 겹 입고 버티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방호복 안으로 들어오는 한기를 막으려 방호복과 장갑 사이 손목에 테이프를 붙이고
장갑을 세 개나 겹쳐 껴도 아린 손가락,
알콜소독제마저 얼어붙어 녹여가며 쓰고 있다는.
애쓰신다. 고맙다!
올 2월 말 완성고를 주기로 하고 작년 10월에 계약한 출판사의 은근한 압력을 받는다.
새해 인사를 겸한.
‘(...) 한 가지 더 바람은, 2021년 상반기에 한단 군과 선생님의 신간,
그리고 선생님께서 전하고 싶으신 학교 이야기도
저희 출판사에서 좋은 모습을 갖춰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은 이미 계약한 원고를 시작했느냐는 점검이고,
뒷문장은 또 다른 책을 계약할 서류를 준비하고 있으니 구상한 걸 구체화시켜보라는 말.
‘물꼬의 겨울살이로 바쁘시겠지만,
1월부터는 원고에 집중해주시고 이달 그믐께 제게 메일 주시길 욕심부려 봅니다.ㅎㅎ’
허허, 일을 잘하시는 양반일세.
조용조용 적확한 지점에서 딱딱 챙겨나가신다.
그나저나 무서운 글빚이라.
계자 끝나면 한 주 남는 1월인 걸...
의대를 다니는 아들이랑 공저하는 것인데,
그는 2월이면 병원실습을 나간다.
허니 정말 1월 마지막 주 뜨겁게 달려야 할.
한없이 평화로운 멧골이나
코로나19에 우리들의 겨울 계자가 어이 될까 온 신경을 세웠다가
일이란 게 사람의 일로만 되는 게 아니기도 하니
턱 놓고 평안히 있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