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마음부터 내리는 아침이었다.

이번 일정에 밥바라지 하겠다던 진주샘, 고마웠다.

그 아이 자라 제 밥벌이하고 예쁘게 살고 있는.

밥이라니! 따순 구들에게 잘 자고 해주는 밥 먹고 잘 쉬다 가시라.

이른 아침 부엌으로 들어온 그를 돌려보내다.

 

해건지기.

수행방에 모였다. 몸을 풀고, 대배 백배를 하고, 명상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마당을 두어 바퀴 걷는 동안 밥상을 차리다.

끝낸 설거지에 맞춰 달골 아침뜨락에들 오르다.

옴 글자 윗부분인 반달모양 자리에 튤립 구근을 심기로 했다.

지난 김장 무렵 나윤샘이 들여 주고 갔던 것.

늦가을에 심는 거라 했지만 못했다면 이른 봄에 심어도 된다지.

아무래도 세가 좀 약할 거라 했지만 가을을 기다릴 것도 아니라.

구근 크기의 두세 배 땅을 파라 했다.

추운 이곳은 세 배로.

겨울에 구근을 캤다가 봄에 다시 심으라고도 했지만 그건 또 너무 일이지.

그냥 여기서 나고 자라라 단단히 묻기로.

먼저 땅을 팼다.

포스랍게 만들어야 구근도 자리를 잘 잡지.

미리 풀도 한 번 잡아주는 과정이기도.

꽃그늘길 곁에 둥글게 한 자리 잡아주기도 했다.

너무 얕게 묻힌 듯하여 다시 흙을 끌어다 덮어들 주었네.

아침뜨락은 그렇게 모아진 손으로 가꾸어지나니.

 

낮밥으로 국수를 말아먹었다.

커피에 핫초코에 꿀차에 라떼에 홍차까지, 풍성한 후식도 있었다.

커피콩을 갈아 내리면서 겨울계자에 다녀간 인교샘이 지녔던 커피 내릴망이 화제였다.

그거 멋지더라!”

필요한 게 없는가 자주 물어주는 재훈샘이 있었네.

연규샘이 찾아주고 재훈샘이 주문해주었다.

이렇게 또 살림을 장만해주는 식구들이라.

둘러앉아 차를 마시다

물꼬는 선진교육문화다, 진주샘이 그랬다.

교육현장에 있으며 더욱 물꼬의 진가를 생각하게 되노라고.

얼마나 귀한 것들을, 중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있는 공간인가,

앞으로 이 나라의 교육이 물꼬로 수렴될 거라고 예견까지 하는.

너무나 낡고 작고 소박한 물꼬 물건들이

어쩜 그리 하나같이 제자리를 얻고 빛나는지,

게다 고급지다라고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며 곳곳을 둘러보니 물꼬가 더욱 그러하더라고.

얼마 전엔 산행을 갔다가 돌아오며 택시를 탔다는데,

아저씨가 청각장애인이었더라지.

해서 내리며 손말로 고맙다 하니 퍽 놀라시더라고.

물꼬에서 배운 손말로 뿌듯했다는 진주샘.

 

낮밥상을 물리고 낮잠을 잤다,

대처에서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다 고향집에 든 자식들 마냥.

오느라고들도 얼마나 고단했을꼬.

뒤란으로 가 장작을 한가득 집어넣어주었다.

그 사이 준한샘이 들어와 학교아저씨와 달골 올랐다.

우리들의 오후 작업이었던, 사이집 서쪽 경사지 위 가장자리로

개나리를 심기 위해 전부 파고 정리하다.

 

짧은 산오름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름계자에 아이들과 갔던 머정골로 갔다.

아이들과 닿았던 곳 너머 아주 아주 높이까지 바위들을 헤치고 올랐다.

물길이어 거친 바위들이 위태로이 급하게 이어진 계곡이었다.

암벽과 소나무가 한 풍경 하는 곳에 이르러서야 발을 멈추다.

, 기다렸던 듯 매부리코 바위 아저씨가 딱 하니 인사를 하였네.

다시 내려오는 길이 멀고도 멀었다.

아찔한 순간들이 여러 차례.

긴 패딩은 바싹 올리고, 혹 바위에 걸릴라.

너무 힘을 주지 말고! 이런 길은 출렁출렁 춤 추듯 해야 무릎도 덜 상해!”

 

저녁밥상을 물리고 실타래’.

각자 준비해온, 읽은 책이거나 이야기를 꺼내는 시간.

우리들이 숙제라고 말하는.

재훈샘이 어떤 일로 밥을 버는가로 말을 잡기 시작했다.

대학을 가자마자 접고 기술을 배워 스무 살에 취직한 첫 직장을 지금까지 다니는.

같이 공부했던 예순인가의 동기들이 모두 떠날 때

지난 10년을 넘게 금형 현장을 지킨 그였다.

한 마디로 페트병을 만들 수 있게 틀을 만드는...”

야속하기도 하여라, 그간 그가 무엇으로 제 생활을 꾸려나가는지 더 마음 써서 묻지 않았네.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나 돌아보니 10년을 하고 있더라지.

자신이 고생한 시간이 있어 후배들에게도 친절하게 알려주게 된다고.

자립관을 나와(보육원을 나오면 주로 처음 그곳에서 생활한다) 혼자 생계를 꾸려가고,

나이가 들며 목표가 생기고 의지가 생기고.

하면서 힘이 나고 힘이 나니 또 다음 걸음을 걸었으리.

자연스레 모두 제 하는 일들을 들려주었다.

연규샘은 작년에 자신에게 쓴 편지를 들고 왔다.

아무리 주변이 어두워도 네 손에 등불을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걸어갈 수 있다고.

졸업 뒤 티벳 전통향을 소개하고 팔고 수업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다.

우리 모두 구매자가 되어주기로도.

여덟 살에 시작한 악기를 결국 전공까지 하게 되고 곧 유학도 떠나는 세인샘,

10년만에 온 유진샘은 각각 청소년지도사로 그간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하고,

역시 함께 그 시간을 건너온 유정샘은 화학교사로 고교 현장에 있었다.

하다샘의 말 끝에는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마음>이 딸려 나왔네.

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이 왜 다른가를 짚어보던.

우리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으로 사는 삶을 꿈꾸었더라지.

자리는 풍요로웠고, 풍성했고, 달았다.

뜨거운 것이 저 아래서 올라왔다.

 

이 멸치가 그 멸치여!”

밥 하는 일을 좀 덜까 하고 진주샘이 밑반찬을 하나라도 해오겠다고

잔멸치를 한 봉지 사서 절반을 볶았다는데,

시킨 대로 잘 했는데, 누래졌다고.

직접 만들면, 결코 탔다고 말하고 싶지 않지, 하하.

대신 남은 절반이라도 가져왔다고 꺼내놓았다. 볶아 냈네.

올 학년도 어른의 학교에서 물꼬식 간단요리강습도 하면 좋겠다는 제안들이 있었다.

해보기로 한다.

 

깊은 밤 마당에서 연규샘과 얘기를 나누며 함께 해우소를 다녀오는데

, 저기 서쪽하늘 저 커다란 빛덩이가 뭐냐,

한순간 지나가서 아차 하는 마음과 늘 함께하는 별똥별과는 다른 걸.

그러나 그것 맞았다, 별똥별!

, 하는 순간 곁에 있던 이는 뭐야, 하며 고개돌리지만 어느새 사라지는 그 별똥별이 아닌,

서로 놀란 눈으로 마주볼 시간도 충분한, 서서히 포물선으로 내리던 빛이었네.

모다 저리 빛이시라.

 

()단법석이 끝나고

오늘도 새벽 3시를 넘기는 하루였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557 2021. 3.17.물날. 맑음 옥영경 2021-04-24 319
5556 2021. 3.16.불날. 도둑비 다녀간 아침 옥영경 2021-04-22 381
5555 2021. 3.15.달날. 종일 흐리다 밤비 옥영경 2021-04-22 335
5554 2021. 3.14.해날. 맑으나 옥영경 2021-04-22 332
5553 2021. 3.13.흙날. 갬 옥영경 2021-04-22 319
5552 2021. 3.12.쇠날. 비 옥영경 2021-04-22 310
5551 2021. 3.11.나무날. 흐림 옥영경 2021-04-22 320
5550 2021. 3.10.물날. 맑음 옥영경 2021-04-22 351
5549 2021. 3. 9.불날. 뿌연 하늘 옥영경 2021-04-22 334
5548 2021. 3. 8.달날. 흐린 볕 옥영경 2021-04-22 358
5547 2021. 3. 7.해날. 흐린 하늘에 아주 가끔 해 옥영경 2021-03-26 428
5546 2021. 3. 6.흙날. 흐려가는 하늘, 는개비 다녀간 오후 옥영경 2021-03-26 592
5545 2021. 3. 5.쇠날. 갬 옥영경 2021-03-26 404
5544 2021. 3. 4.나무날. 비 옥영경 2021-03-26 439
5543 2021. 3. 3.물날. 안개에 잠긴 마을 / 호흡명상법 옥영경 2021-03-26 392
5542 2021. 3. 2.불날. 갬 옥영경 2021-03-26 332
5541 2021. 3. 1.달날. 비 종일 옥영경 2021-03-26 324
5540 2월 어른의 학교(2.26~28) 갈무리글 옥영경 2021-03-16 419
5539 2월 어른의 학교 닫는 날, 2021. 2.28.해날. 흐리다 빗방울 살짝 지나는 오후 옥영경 2021-03-16 527
» 2월 어른의 학교 이튿날, 2021. 2.27.흙날. 맑음 옥영경 2021-03-16 41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