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불날. 갬

조회 수 354 추천 수 0 2021.03.26 00:42:06


 

어제 종일 내리던 비는 새벽에 눈이 되었다.

일어나니 땅을 살짝 덮은 눈.

산 위에는 상고대가 눈 시렸다.

 

오후에는 본관 앞 꽃밭 앞을 긁다.

꽃밭을 구분 짓고 있는 울타리돌이 때깔 났다.

3월에는 꽃밭의 돌이며 흙이며 죄 긁어내려한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런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은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김훈의 <바다의 기별>에서 옮겼던 글을 생각했다.

이제 더는 슬퍼하지 않음이 슬프다거나 하는 글 자체의 의미보다

우선은 봄이기 때문이었고,

물론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었겠고,

다음은 마른 잎들 때문이었다.

먼 슬픔이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대목이

마치 지난여름 뜨거운 시간의 푸름들이 이 봄의 순들로 자리를 대체하는

그 순환이 아리게 다가왔던 듯도 하다.

떠나는 시간은 떠나게, 오는 시간은 그저 오게 하라,

말려도 떠나고 막아도 올 것이니.

 

3월은 달마다 셋째 주에 하는 물꼬주말수행(물꼬stay)도 마지막 주의 빈들모임도 없이 지나기로.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글쓰기로.

마침 바깥수업도 없는 때라.

방문과 상담도, 위탁교육도 모두 4월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556 2023. 4.13.나무날. 황사 덮친 하늘 옥영경 2023-05-12 395
5555 청계 닫는 날, 2023.12.24.해날. 가만히 내리는 눈 옥영경 2023-12-31 395
5554 2022. 4. 3.해날. 맑음 / 설악산 아래·3 옥영경 2022-05-03 396
5553 2023. 1. 5.쇠날. 잠깐 해 옥영경 2024-01-08 396
5552 2020. 9.21.달날. 아주 가끔 구름 옥영경 2020-10-20 397
5551 2020.12. 7.달날. 흐림, 절기 대설 옥영경 2021-01-09 397
5550 2021. 6.25.쇠날. 맑음 옥영경 2021-07-22 397
5549 2023. 8.19.흙날. 구름 꼈다 맑음 / 2023 멧골책방·1 여는 날 옥영경 2023-08-21 397
5548 2020. 1.26.해날. 저녁부터 비 옥영경 2020-03-03 398
5547 2020.10. 2.쇠날. 도둑비 다녀간 옥영경 2020-11-15 398
5546 2021. 8.19.나무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21-08-29 398
5545 2020. 9. 3.나무날. 마른 비의 아침 지나 갬 / 구조 되다? 옥영경 2020-09-21 399
5544 2020.11.12.나무날. 맑음 / 우뭇가사리 옥영경 2020-12-16 399
5543 2021. 1. 7.나무날. 밤새 눈 옥영경 2021-01-19 399
5542 2022. 5. 1.해날. 맑음 옥영경 2022-06-09 399
5541 2020.12.13.해날. 눈비 아닌 비눈 옥영경 2021-01-10 400
5540 2021. 1. 4.달날. 해 옥영경 2021-01-19 400
5539 2021. 1. 8.쇠날. 맑음 옥영경 2021-01-19 400
5538 2021.10. 6.물날. 는개와 안개비 사이 / 설악·7 옥영경 2021-12-07 400
5537 2023.10.10.불날. 맑음 옥영경 2023-10-24 40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