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의 달못 아래 수로가 내내 말라있던 겨울이었다.
오늘은 흐르고 있었다.
엊그제 비 왔으니 어제부터였을 것이다.
오늘은 흙날, 아침의 엷은 볕 아래 창가에서 책을 읽다.
가지고 있다고 다 읽은 책이 아닌데,
어쩌다 잡은 책에서 현재 질문하는 어떤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길을 만나고는 한다.
거의 넘겨볼 일 없겠다 싶은 책이었는데,
훑어보기(차례)를 보며 이번 달에 쓰려는 책과 연관이 있겠다고 읽었는데
도움이 되네.
밑줄 한 줄만 그어도 책읽기의 덕이라.
낮밥을 먹고 대처에서 들어온 식구들이랑 다 나가 일을 좀 했다.
지난 주말 ‘어른의 학교’를 마치고 사람들을 보낸 뒤 바로 달골 올라
묘목밭에서 뿌리 채 뽑은 개나리를 파다 아침뜨락 아래편 공터의 가장자리를 돌며 심었더랬다.
오늘은 햇발동 부엌 창 앞으로 너저분하게 뻗어있던 개나리를 잘랐다.
서둘러 두어 차례 자르고 싶은 걸 참으며 이때를 기다렸다.
풀이 아니라 목(木)이라 부를 심이 생긴 지금을.
15cm 정도씩 잘라 먼저 심은 개나리 사이로 두 개씩 꽂아나갔다.
가로로 이어진 줄에다 사이로 심은 둘을 가로로 나란히 놓았으니
멀리서 보면 결국 세 줄이 만들어진 거다.
아직 땅을 파지 못한 느티나무 뒤쪽 이삼 미터도 마저 패서 심었다.
엊그제 비 왔고 오늘도 흐리니 땅이 촉촉해서 일이 수월했다.
삽 든 김에 아침뜨락 지느러미길 시작 지점의, 바위 축대 아래 배수로도 좀 다듬었다.
개나리 심고 는개비까지 다녀가니 이 또한 고마울 일.
본관 현관 윗부분 유리창 걸레질을 하다.
사다리 들인 김에 통로 천장 거미줄도 쳐내다. 봄이 오니까.
비누를 푼 물에 걸레를 묻혀 오르고,
바깥쪽으로는 들머리 지붕 위로 올라가 닦다.
그리고 다시 깨끗한 걸레로, 다음은 마른 걸레로.
다 했다고 치운 사다리였는데, 앗, 자국이 남아있네.
내일 다시 한 번 더 닦기로. 학교아저씨한테 부탁하다.
이런 일이 정작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마음먹는 그 한 번이 쉽지가 않은.
그냥 쓰윽 손이 닿으면 또 그렇지 않은 걸
무겁고 긴 이중 사다리를 꺼내고 옮기고 세우는 일이면 그런.
동해에서 홍게가 닿았다.
아직 살아있었다.
물에 10여 분 담가 물을 먹였다가 등과 배를 눌러 주어 짠물을 뱉게 한 뒤
압력밥솥에 채반을 깔고 등을 아래로 착착 올려 25분 정도 쪘다.
엄마가 게를 맛있게 먹는 법은, 귀를 닫고 게만 바라보며 먹을 것.
다섯 식구들이 둘러앉아 제 쟁반의 게를 열심히 발라 먹었다.
‘금방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어요.
어디에서나 물꼬에서 저희에게 보여주신 태도와 마음으로 말하시는 옥샘이 감동이에요.’
그렇게 쓴 그이가 감동이었네.
품앗이샘 하나가
지난달 22일 국악방송 문화시대 월요초대석에서 책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관련 대담을 듣고 문자를 보내왔다.
어떤 말들을 했었지...?
기본 질문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진행자는 내게 정말 ‘질문’을 했더랬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기로 한 대화의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가 ‘물었다’; 선생님은 왜 사세요?
그의 진정한 혹은 순정한 질문이었다.
대답은 내가 모르는 것이었다. 우리가 왜 사는지를 내가 또는 난들 어찌 알랴.
그저 태어났으니 산다.
“그런 건 모르겠고 결국 어떻게 사는가를 우리 고민해야지 않냐”고 답했지, 아마.
이어 소중한 게 뭐냐 물어왔고, 지금은 앞에 있는 당신이 소중하다고 답했다.
진행자 역시 늘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이를 그리 여겨야한다 생각하지만
즉각적으로 그리 생각하지는 못하신다던가.
마지막 질문은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또 어딜 가시겠냐 물었다.
사는 게 여행이더라, 들에 가서 풀을 뽑고, 밭에 가서 풀을 매겠다 답했다.
방송을 들으며 내가 잘 웃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러고 보니 여러 사람이 그런 말을 했더랬다.
잘 웃으면 되었다. 그리 살면 되었다 싶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