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서른을 앞둔 청년이 말했다.
나도 그렇다.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어른...”
나도 그렇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이 되고 싶다.
뭘 해봐야 안다,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디가 한계인지, 그게 한계이기는 한지.
그건 머리가 아니라 몸의 일이다.
어릴 적 막연히 대학은 사범대 수학교육과나 국문과를 가리라 했다.
자라면서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고,
볼 것 없이 국문과 가는 줄 알았다.
그야말로 문학하러.
하지만 밥벌이는 다른 걸 하면서 문학은 번외장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해서 한 해 동안 농사 열심히 짓고 겨울 한 철 판화 작업을 하는 이철수 선생이 좋았다.
당신의 작품도 당연 좋지만.
문학은 그렇게 일상을 살면서 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하는 거라고 여겼다.
열심히 살았다. 글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는 게 고단하니 안 되더라. 애정도 치열함도 고단을 뛰어넘을 만큼은 아니었다.
굳이 비교할 것까지야 없지만
시간을 투여하고 애쓰는 사람들과 애저녁에 견줄 일이 못 됐다.
그렇게 문학은 내게 쓰는 자가 아니라 읽는 자로 남게 했다.
비문학이지만 글 쓸 기회가 왔고, 썼고, 책을 냈고,
그걸 계기로 출판사의 기획으로 책을 또 쓰게 됐다.
그것도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을 이어 계약한. 운이 좋았다.
지금 쓰는 원고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잘 안 되고 있다.
왜? 읽은 것도 아는 것도 두텁지가 못하다.
글쓰기는 생각과 입장이거늘 그 정치성도 온통 엉망이다.
자기 위치에 대한 정치적 자각!
그렇다.
글이 나아가지 못할 때 정작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방향을 잡고, 얼거리를 짜면 벌써 절반일 걸, 그것도 헤매고 있다.
그 다음이 참고도서를 보는 것일 텐데,
정히 안 되면 차례를 뒤집어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오늘은 대처 식구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건너편의 한 찻집에서
책을 읽는 오후였다.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