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낮 빛을 다 몰아낸 저녁답에
아침뜨락의 지느러미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굳이 불을 켜 걸을 건 아니었고
어둠에 눈을 익혀 중간쯤 이를 때,
저만치 앞서, 지느러미 길 끝을 너머 산으로 이르는 길에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났다.
먹을 것 찾아 내려온 산짐승이겠다.
고라니려니 하는데 끼쳐오는 느낌은 멧돼지에 가까웠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돌아서서 숲 쪽으로 갔다.
아침뜨락에 오르는데, 그 너머 계곡을 따라 소리가 이어졌다.
다시 동물처럼 소리를 냈다. 그가 바삐 마른 나뭇잎들을 스치고 갔다.
내 걸음이 달못에 이르렀을 때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 역시 그러고 있음을 알았다.
아가미 길을 따라 사냥꾼이 짐승 몰 듯 여럿도 아닌데 함성같이 내지르며
길 끝을 향해 달렸다.
놀란 그가 더 멀리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는 해질녘 밥못 머리의 패놓은 자리에 개나리를 심었다.
남아있던 절반의 자리였다.
길 닦아놓으니 뭐가 먼저 지난다고
정말 너구리 하나가 그 길을 따라 발자국을 남겨놓았더랬지.
해지는 저녁에 발이 시려웠더라는 얘기가 길다.
그예 감기 왔다. 몸살도. 오전이 그렇게 조각이 나버렸다.
감기약을 다 먹었다. 잘 없는 일이다.
저녁답에야 좀 수습이 되었던.
잠깐 나갔던 걸음에 은동이와 금동이의 양손에
어제 수선해놓은 깡통을 다시 돌려주고,
그 곁에 있던 철제 정원안내판도 뽑아 백색 라카를 뿌려두다.
밤, 퍽 두터운 교육서를 하나 쥐다.
어떤 책은 그런 두께가 무색하게 잘 읽히고 재미까지 있기도.
그리 쓰자면 얼마나 들였을 시간과 노력일지.
원래 그보다 세 배나 많은 양의 원고였다고 했다.
얼마나 다듬고 다듬었으려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자세가 공부가 되는 책이었더라.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