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이자 논두렁이고, 젊은 날 물꼬 품앗이였던 이네랑 전화 상담.
아이와 아비의 갈등이 깊다.
아직 초등생인 아이인데 자라는 동안 남은 많은 날들을 어쩌나.
그 무서운 8학년스러움(북한도 무서워 내려오지 못한다는 그 중2병)의 세월도 남았는데,
지금 어떤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그 격랑이 얼마나 크려나.
이 문제를 푸는 주체는 아비여야 한다.
당연하다, 어른이 달라지만 아이의 변화는 쉬우니까.
곧 아비랑 치유과정을 밟아보기로 한다.
갈등은 집안사에만 있는 게 아니지.
우리 마을이라고는 말 안하겠다, 하하.
멧골에도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살며 생기는 문제라면 산골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라는 곳들도 사람이 모인 일이라
거기서도 시기와 질투가 있고 싸움이 있고...
하물며 자연부락이라면 더 더욱 자연스런 일이다.
마을에서 낮 2시 반짝모임이 있었다.
마을방송을 놓쳤고
뒤늦게 부녀회원 한 분으로부터 전말을 듣다.
마을에 신구 갈등이 20년이 다 돼 간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건 정월대보름 달집 태우는 행사를 앞두고
급기야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말자고 작파한 뒤부터였다.
젊은 것들이 노인네들 말을 안 들어서,
노인네들이 콩나물 하나 무치는 것까지 잔소리를 해서,
나이 들어서 바래는 게 뭐 그리 많냐,
저들은 나이 안 드나 보자,
뭐 그런 말들이 있었다.
전선을 형성한 건 아니었지만 부녀회와 노인회의 갈등인 셈이었다.
거기 목소리 큰, 절대지지 않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긴 세월을 장악해온 팔십 전후 똘똘 뭉친 어른 셋이 있다.
새로운 이장도 있고 마을개발위원들도 있지만 그들을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젊은 축들이 합리적으로 목소리를 모으고 행동할 수 있으련만
그건 또 어려운 모양이다.
어느 해는 어버이날 행사를 두고 대접을 하니 못하니 하다,
너들이 안 하면 우리끼리라도 잘 해먹지,
그렇게 경로당에서 어른들끼리만 잔치를 한 해도 있었다.
그래도, 대보름제는 영영 사라졌지만 어버이날 행사는 이어져왔는데...
이번에 돈 문제가 걸렸다.
노인회에서 경로당 경비를 회원들끼리 각 120만원씩 나눠 가진 게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는데, 회원들끼리 기분 좋게 나눈 것이다.
법률로 따지자면 횡령은 아니다.
회비를 가지고 회원들이 나눠가진 것이니까.
회원들이 총회에서 결정한 일이라면 할 말 없는 거다.
그런데 애초 그 경비의 출처가 마을 공동기금과 연관이 있는 게 문제였다.
윗마을 옆마을 아랫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 경로당을 지었고,
그걸 헐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남은 경비가 원천이었으니.
미리 말 한 마디 했다면 젊은 축이 반대할 것도 아니었다.
승산 없이 회의는 끝났고,
서로 화만 난 채 헤어졌다고 했다.
이 건은 그간 마을의 일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마을의 많은 일이
그간에도 그 세 어르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여기는 씨족 집성촌이고,
그 어르신들의 자식대가 바로 이어진 젊은 세대이니
더 집중적으로 이런 사안이 다뤄지지는 못한다.
노인들의 논리는 견고하다.
그런 무식이야말로 철옹성이다.
관례 관행을 깨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문제의 고리를 푸는 주체는 누구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