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아진 느낌이 좋다.

단식수행이 주는 최대의 선물은 이것 아닐지.

 

날이 잘도 간다.

무슨 무릉도원이기라도 한 양 평화로운 나라이다, 달골은.

대문을 걸어 잠갔고,

그래도 다른 때라면 산소며 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끔 찾아들기도 하지만

박새며 곤줄박이며 산짐승들 소리 아니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오직 수행만 하는데 좋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사람 만날 일 없으니 더욱.

 

해건지기로는 각자 자신의 몸을 쓰다듬고 비비고 쓸어주었다.

오늘은 기운이 좀 떨어지기 선택한 몸풀기였다.

(이번 단식에서는 여태 해오던 몇 가지 단식 보조요법 대신

평상시 하는 여러 수행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음)

호흡명상하고.

아침뜨락에 들었다. 툭툭 노랗게 빨갛게 봉오리를 벌린 튤립이 감동이었다.

가장자리 언덕으로는 줄기딸기 꽃이 한창이었다.

올해도 못다 먹고 갈 딸기이겠다.

아침뜨락 곳곳에 놓인 바위에 쉬어가며 천천히 걸었다.

밥못 너머에서 두릅도 땄다.

 

말을 삼갔고,

많이 쉬었다.

하느라바쁜 몸, ‘하지 않았다.

일어나는 몸의 반응이며 생각에 저항하지 않고 오직 받았다.

단식수행 나흘째 밤이었던 그젯밤 불편한 속으로 잠을 설쳤더랬다.

단식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 뭔가 편치 않은 증세들은

그간 자신의 생활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심한 설사에다 한밤 결국 토했다.

고비를 넘기고 나니 좀 편해졌다.

하지만 간밤에도 다시 속이 좀 꺼끌거렸고, 게워낼 듯 뒤집어졌다.

나올 거야 물밖에 없는.

언제나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단식을 시작하며 긴 운전과 날밤을 지새며 랩탑을 안고 있어야도 했고,

단식 안내를 겸하고 있어 지나치게 많은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여느 때와 달리 힘이 더 빠질 만했다.

 

이른 오후 거실에서 뜸들을 떴다.

여러 증세를 다스려주는 한 방법.

오후에는 몸이 몹시 가려웠다.

오른쪽 허벅지, 왼쪽 일부, 엉덩이 쪽.

자연스런 반응 하나다, 단식 때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안의 독소가 나오는 것일.

이럴 땐 젖은 수건으로 닦거나 몸을 씻거나 풍욕을 할 것인데,

살살 비벼주는 걸로 편안히 바라보았다.

 

늦은 오후에는 혼자 나가 잠시 땅도 팠다.

아침뜨락에서 마지막 나오는 길을 따라 길게.

접시꽃 씨앗을 놓을 자리다.

준한샘이 들렀다가 손을 보태주었다.

 

수시로 물을 마셨고, 삼시 세 때 소금을 한 알 먹었다.

잠이 오면 잠을 잤고, 힘이 들면 쉬었다.

명상하고, 호흡했다.

호흡만 잘해도 몸을 푸는 효과가 있다.

숨이 생명의 처음이고 끝이 아닌가.

저녁에는 책을 읽었다. 수행서도 아니었고 굳이 고른 책도 아닌,

그저 손에 잡히는 걸 읽었다.

이번 단식은

‘(일어나는 것들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일정이라 하겠다.

밤에는 몸에서 일어나는 증세에 따라 뜸을 떴다.

단식에 동행하는 이가 어렵지 않게 일정을 따르고 있어 고마웠다.

우리 생의 어느 한 때 이 깊은 멧골에서 여러 날을 같이 수행하는 인연도 예사롭지 않음이라.

 

이번 수행일정에 이틀과 사흘 주말에 동행하기로 했던 이들은

물꼬의 다른 일정에 합류키로 했다.

한 사람은 전날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서도 오겠다 했으나 말렸다.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우리가 그리 무리하면서까지 수행을 하겠는가.

하여 둘만 동행하고 있는 이번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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