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맨질맨질하다, 새까맣지만.

단식이 주는 덕 하나이다.

이레 단식수행을 끝냈고, 이레 ()복식에 들어간다.

수행 도반도 이틀은 물꼬에서 복식을 하고 떠나기로.

 

아침저녁 아침뜨락을 걸었다.

어떤 마음들이, 어떤 변화들이 있었던가 나누었다.

아침마다 새로 사는 삶이지만

이제 몸을 바꾸어 다시 산다 할.

 

이레 수행 동안의 쌓인 빨래들을 했다.

가벼운 속옷과 양말은 밤마다 손빨래를 해왔지만,

볕 좋은 사이집 마당 빨랫줄에 가서 널었다.

 

오후에는 볕 아래 잔디밭에 요가매트를 깔고 책을 읽고,

바람을 맞았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처럼 새로 하늘을 보고 풀을 보고.

책은, 챙겨서라기보다 있어서 손에 쥔 것이었는데,

글쓴이가 오래전 20대에 쓴, 절반은 사변적이고 절반은 시사적인 내용이었다.

익지 않은(이리 말해도 되는지...) 사유를 읽는 데서 오는 피로감이 있었다.

날 익은 과일을 입에 문 것 같은.

하지만 어디나 배움이 있듯 생각 하나 건졌다.

존대하지 않아도 하대가 되지 않는, 공평하고 공정하고 독할 수 있는 사이’.

그런 관계를 나도 생각하던 바.

 

복식으로는 어제 밥물을 비우고 두었던 흰쌀죽에 물을 더 부어 미음을 끓였다.

낮에는 묽은 죽을 먹고,

저녁에는 죽에 콩나물(마침 있어서)을 같이 넣어 빨아먹었다.

 

단식수행 일정이 있는 걸 아셨던가,

이웃 도시에서 연락이 왔다.

무슨 교육실을 정리하면서 나온 새 물건들 가운데

실내슬리퍼며 이름표며 물꼬에서 쓰일 만한 것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필요한 걸 고르면 챙겨두었다 나누시겠다는.

다녀가시니 이곳을 보았고, 보았으니 필요한 것도 생각하게 되셨을.

마침 교육실을 비우게 된 때이고.

낡고 오래된 이곳 물건들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실내슬리퍼만 해도 얼마나 적절한 선물인지.

마침 이름표도 사들여야 했는데.

반갑고, 고마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158 2008. 6.29.해날. 가랑비 뒤 옥영경 2008-07-11 1497
6157 11월 30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4-12-03 1497
6156 5월 28일, 봄학기 마지막 날 옥영경 2004-05-31 1496
6155 2007.10. 5.쇠날. 흐릿하더니 걷히다 / 대전 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 옥영경 2007-10-13 1495
6154 2006.3.24-5.쇠-흙날. 맑음. 떼 뜨러 가다 옥영경 2006-03-27 1495
6153 [바르셀로나 통신 10] 2018. 8.22.물날. 맑음 옥영경 2018-08-23 1494
6152 [바르셀로나 통신 7] 2018. 4.27.쇠날. 맑음 옥영경 2018-04-28 1494
6151 2006.8.20.해날. 흐림 / 달골 포도, 상에 오르다 옥영경 2006-09-02 1494
6150 9월 13일 불날 비 얼굴만 봬주고 옥영경 2005-09-24 1494
6149 3월 9일 물날 맑음 / 물입니다, 물 옥영경 2005-03-10 1494
6148 120 계자 닷샛날, 2007. 8. 9.나무날.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7-09-03 1493
6147 105 계자 닫는 날, 8월 6일 흙날 구름 옥영경 2005-08-14 1493
6146 9월 6일 불날 저 멀리 태풍 지나가느라 예도 비 들고 옥영경 2005-09-15 1492
6145 4월 20일 불날 잔치 앞두고 옥영경 2004-04-28 1492
6144 6월 3일 쇠날 말짱한 하늘 옥영경 2005-06-04 1491
6143 2011. 7.30.흙날. 맑음 / 145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1-08-03 1490
6142 10월 25일 달날 흐림 옥영경 2004-10-30 1490
6141 계자 96 둘쨋날, 8월 3일 옥영경 2004-08-07 1490
6140 2022. 1.28.쇠날. 맑음 옥영경 2022-02-24 1489
6139 120 계자 나흗날, 2007. 8. 8.물날. 소나기 오다가다 옥영경 2007-09-03 148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