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간밤 자정도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그냥 일어나기로 한다.

마당에 내려섰다.

초승달과 별이 자리를 이동해있었고,

때 이르게 소쩍새가 울었다.

모든 게 급속도로 빨라진 계절이다, 이래도 되는가 싶게.

아침에 먹을 단호박죽을 끓였다.

아쉬워 쌀가루를 살포시 더했다.

해 기운 번져올 때 다시 눈을 좀 붙였다.

 

이번 수행의 도반은 회복식까지 이틀 동행하기로 했다.

혹 혼자 돌아가서 먹는 데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이틀은 몸을 회복하고 갈 수 있으니 잘한 결정이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아침뜨락을 걷고,

아침으로 죽을 먹고 햇발동과 사이집 청소를 했다.

학교로 내려가 감자와 두릅을 넣고 죽을 끓여먹고,

진돗개 가습이와 제습이 산책을 시켜주었다.

 

지난겨울 김장하면서 항아리에 잔 무로 바로 담갔던 동치미.

굵은 소금 후루룩 뿌려 하룻밤을 절이고

다음날 끓인 물을 식혀 담고

거기 대파를 통째, 지고추, 생강과 마늘을 넣었더랬다.

김치냉장고가 있는 살림은 아니어

겨울 지나 냉장고에 넣었는데, 백태가 꼈다.

거름망으로 걸러냈다.

간장에 핀 꽃가지를 떠내듯.

발효식품의 장점이겠다.

여기 물을 더해 마시다.

무는 썰어 씹고서 뱉었다, 아직 위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므로.

메스껍던 속이 가라앉았다.

 

단식수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를 위해 이것저것 챙겼다.

혼자 사는 서울살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담근 된장이며 멸장이며 콩장이며 곶감이며

두릅이며 두어 가지 채소를,

그리고 냄새나서 못 보낼 김치 대신 볶아서 보내다.

 

운전이 아직 불편했다.

불가피하게 역까지 나가게 되었다.

귀찮거나 어려운 일도 마음을 달래 먹으면 또 즐거울 수가 있지.

단식수행을 함께한 이도 떠나고 다시 고요한 멧골로 돌아왔다.

죽을 먹었다.

 

저녁에, 과일이 너무 고팠다.

마침 이웃이 딸기를 들여 주고 갔다.

딸기에 물을 더해 갈아마셨다. 개운했다.

아직 찬 성질의 음식을 먹기에 다소 이른 감이 있었으나.

오래 된 영화 한 편을 보며 잘 쉬어준 밤이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들일을 시작으로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482 2021. 8.18.물날. 밤비 옥영경 2021-08-29 412
5481 2023. 8.1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08-19 412
5480 2023. 9. 6.물날. 맑음 옥영경 2023-09-19 412
5479 2023.10. 2.달날. 맑음 옥영경 2023-10-17 412
5478 2022. 4. 4.달날. 맑음 / 설악산 아래·4 옥영경 2022-05-03 413
5477 2022. 4.21.나무날. 흐림 옥영경 2022-06-04 413
5476 2022. 6 16.나무날. 갬 / 청소에서 사랑까지 옥영경 2022-07-09 413
5475 2020. 8. 8.흙날. 비 / 166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0-08-13 414
5474 2022. 9.14.물날. 흐림 옥영경 2022-10-01 414
5473 4월 빈들 여는 날, 2021. 4.23.쇠날. 살포시 흐린 옥영경 2021-05-14 415
5472 4월 빈들모임(4.23~25) 갈무리글 옥영경 2021-05-14 415
5471 2021. 9.10.쇠날. 흐림 / 사이집 덧붙이 공사 시작 옥영경 2021-10-28 415
5470 2020.10. 4.해날. 어둑하다 비 몇 방울 다녀간 오후 / 4주간 위탁교육 여는 날 옥영경 2020-11-15 416
5469 2021. 8. 5.나무날. 갬 / 신간 손에 오다; <다시 학교를 읽다> 옥영경 2021-08-12 416
5468 2021. 9.30.나무날. 맑음 / 설악에 깃들다·1 옥영경 2021-11-24 416
5467 2021.12. 6.달날. 맑음 옥영경 2021-12-31 416
5466 2022. 7.10.해날. 다저녁 소나기, 밤에도 두어 차례 옥영경 2022-07-30 416
5465 2023. 4.11.불날. 바람과 지나는 비와 옥영경 2023-05-09 416
5464 2023. 8.20.해날. 흐리다 얼마쯤의 비 / 2023 멧골책방·1 닫는 날 옥영경 2023-08-21 416
5463 2019.11.25.달날. 흐림 / 누구 잘못이고 누구 책임인가 옥영경 2020-01-10 41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