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그저 음식 재료를 익히는 과정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나간 기억이 버무려지고,

지금의 만남도 확장된다.

고사리나물 때문에 식혜 때문에

자주 눈시울이 붉어진, 빈들모임에 모인 이들이었다.

무슨 대단한 걸 전수하기라도 하는 양,

옥샘 이제 세상에 없어지시는 것 같다고들 말했다.

우리는 선생과 학생이었고, 동료였고 동지였고 벗이었다.

과거에는 이리 모여 살면서 밥하는 과정에도 참여하며 배우고 했는데,

요새는 다 혼자 살고 하니까 배울 데도 없고...”

진주샘이 말했다.

 

늦은 밤 들어왔다 새벽에 나가는 객이 있었다.

죽을 차려주었다.

그 결에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기 좋았다.

아주 맑진 않아도 흐린 날은 아니었다.

바람이 제법 셌다.

아침뜨락에 들어 어제 쳤던 못으로 가 마른 풀들을 걷어냈다.

천천히 빈들모임을 준비했다.

 

저녁 8시가 다 돼 연 빈들모임이었네.

어제도 그렇더니 오늘도 저녁 밥상을 두 차례 차렸다.

기본 식구들이 먼저 먹고 상을 물린 뒤,

황간역에 내려 택시로 빈들모임에 오는 이들을 맞아 다시 상을 차렸다.

간장 하나 놓고 먹어도 집밥 먹어야지!”

늦더라도 들어와서들 저녁을 먹으러 일렀더랬다.

전채로 죽과 부침개를 내놓았고,

새로 끓인 된장찌개며 반찬들을 올렸다.

달래장이 싱그러웠다.

반찬을 싹싹들 비웠다.

 

물꼬의 오랜 젊은 친구들이자 논두렁인.

아이에서 중고생 새끼일꾼이었고 품앗이가 된, 그리고 논두렁이 된 이들.

이번 빈들모임의 중심생각은

'혼밥(혼자 먹는 밥)을 위한 간단하고 단단한 밥상'.

같이들 역에서 내려 장을 봐서 들어왔더라.

처자들이 뭘 아려나 싶어도 어찌나 잘 봐온 장이던지.

집에서 냉장고들을 털어오기도.

명절이면 식혜부터 만들던 할머니처럼 그리 맞고 싶었다.

식혜가 삭혀지는 동안 같이 반찬 몇 만들었네.

불린 고사리를 밑간해서 볶고 들깨가루로 마무리 하고,

미역줄기의 소금을 씻어내고 불려두었던 것을 건져 파와 마늘 넣고 볶고,

시금치를 같이 다듬었다. 다듬는 법부터 안내.

다듬어진 걸 사거나, 어른들이 해준 시금치나물을 먹거나 했을.

그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잘 살리기, 간단한 조리, 간단한 양념!

이번 빈들에서 하는 일종의 요리 강좌의 고갱이는 이것.

끓는 물에 소금 한소끔 넣고 시금치를 데쳐

물꼬 멸장(멸치젓갈을 끓여 하룻밤 받쳐 마알갛게 내린)과 다진 마늘로만 무치기.

참기름이 풍미를 더하기도 하지만 때로 그 본연의 음식의 향을 해치기도 하니

거의 쓰지 않으려 하다.

그야말로 간단한! 

우리에겐 멸장 콩장이 있잖나. 그거에다 찧은 마늘만으로도 웬만한 음식이 다 된다.

 

곡주도 내다.

안주로 마른안주에다 버섯을 살짝 구워 소금 치고 올리브 오일을 둘렀다.

어찌나들 맛나 하던지.

멧골의 봄밤, 반가운 얼굴들, 그보다 맛난 일이 또 있으려나.

그 사이 식혜에는 밥알 예닐곱 개 둥둥 떴다.

밥통을 꺼내 끓이다. 편을 낸 생강도 같이.

막 끓여낸 식혜를 뜨겁게 맛보다.

처음 먹어봐요.”

만드는 과정에 함께한 일은 드물었을 것이니,

대체로 결과로서의 식혜를 만났을 것이니.

 

단 바람 같은 밤이었더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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