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의 회연서원(한강 정구의 회연초당이었던)에 다녀오다.

널리 알려진 앞마당의 백매화는 꽃을 보내고 매실을 달고 있었다.

볕이 좋았고, 바람이 여기 듬성 저기 듬성 옮겨 다녔다.

들머리 커다란 느티나무의 높은 가지 끝에서 새 두 마리가 한참을 노래했다.

경회당 마루에서 동재와 서재 사이 마당을 내려다보며 오래 앉았다.

서원 곁으로 강둑을 따라 낮게 아카시아가 있었다.

꽃에 손이 닿았다.

꽃을 훓었다.

 

돌아와 아카시아 꽃차 만들었다.

꽃차를 만들 때면 쓰는 핏자팬을 꺼내온다.

이런! 한참을 쓰지 않았더니 연결선에 녹이 보인다.

방청제로 수습을 좀 했다. 

팬 바닥에 몇 개 녹슨 점도 보인다.

면이나 한지를 깔아 찔 때는 이 팬을 쓰고, 살청(덖는) 건 가스렌지 위에서 다른 팬을 쓰기로.

채화, 채엽에 빚대어 내가 쓴 말이지 실제 쓰이는 말은 아니다.

꽃을 따는 게 먼저.

따왔으니 다음은 유념이라. 비비기. 상처를 내는.

이로써 나중에 차를 달일 때 찻물에 갖가지 성분이 쉬 우러나오게 되는.

찻잎에 낸 상처라면 발효를 돕게 되는.

아카시아 꽃잎을 면주머니에 넣어 손으로 쥐었다 폈다 몇 차례 했다.

세 번째, 증제. 찌는 거다.

팬 위에 찜기 놓고 한지(면보 대신 한지로) 놓고, 팬 온도 2단에서 자체 수분으로.

충분히 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린내가 나니까, 콩나물 덜 삶은 것처럼.

자색의 꽃받침이 예쁜 연두색으로 변했을 때 뚜껑을 열었다.

네 번째 살청이라. 덖는 거.

팬 온도를 보온으로 내리고 꽃을 휘저어가며 펴서 까쓸하게 말릴 것이었는데,

핏자팬에 녹슨 점 몇 개 있기에 가스렌지로 옮아가 후라이팬에 아주 낮은 불에서 덖다.

끝에 구수한 맛을 더하기 위해 불을 아주 조금 더 세게 해서

(핏자팬이라면 1단으로 올리고) 후다닥(10? 20?) 까불리기.

이제 잠재우기로 넘어간다.

팬에 다시 찜기 놓고 한지 놓고 꽃 놓고 2시간 보온 상태로.

팬 온도를 1단으로 올리고 뚜껑에 김이 서리면 닦아내고 또 닦아내고,

더 이상 김이 오르지 않으면,

2단으로 올려 또 김 서리면 닦아내고 또 닦아내고.

마지막으로 식혀서 유리병에 넣었다.

몇 시간이 흘렀더라.

오랜만에 차를 덖었다.

그저 시간만 들이면 되니 어려울 것 없는.

메주도(간장도 된장도) 고추장도 김장도 어려운 건 없으나

힘이 좀 들고 시간이 필요한어째도 장이 되니.

꽃차 또한 어째도 차가 되는.

 

유리 찻주전자에 아카시아 꽃차 한 자밤을 넣고 달이다.

구수한, 맑은, 따순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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