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17.달날. 비

조회 수 304 추천 수 0 2021.06.18 23:00:36


 

비 오락가락.

봄장마다.

5월 초하루부터 열흘 가까이 흐리거나 비.

여름장마 못잖은 습기에 곰팡이가 자리 튼 곳들이 집안에 보인다.

한편 날 더우니 겨울처럼 욕실변기 바깥 면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히기도.

 

아침이 온다.

마감까지 이제 2시간이 남았고,

봐야 할 남은 원고 분량도 딱 2시간 분이다.

졸음이 몰려왔다.

아침뜨락을 걷고 나왔다.

아침 9, 밤을 꼬박 새고 교정 1교를 넘긴다.

모든 약속이 중요하겠지만 원고 마감 시간은 특히 잘 지키고 싶다.

출판사며 잡지사에서 바깥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마감 넘기는 저자들이 예사였다.

싫었고, 내가 그 처지가 되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재작년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를 넘길 때

편집자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그 일을 하면서 이렇게 따박따박 마감 지켜주는 사람이 처음이었다고.

같은 편집자가 이번 책을 맡았다.

원고 기다리는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썼다.

 

저녁 9시 전화가 울렸다.

통화가 가능한 시간대를 아는 이다.

상담이다. 오랜 물꼬의 식구였고, 학부모이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며 두 아이를 홀로 건사하는 그니이다.

아이와 아침부터 씨름했고, 그예 퇴근하고 들어온 저녁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고.

초등생인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았더란다.

다행히 일터가 집이랑 가까워 가서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냈다고.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원에도 안 간 아이.

또박또박 사건의 경위를 아이에게 잘 설명하는 그는

아이를 붙들고 두어 시간 요목조목 따지고 방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그런데, 샘아, ‘네가 원인이라고만 들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 놈의 아이가 문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접근은 마음만 다친다.

너도 힘들겠다, 그 마음을 놓치지 마시라 하였네.

당신 힘든 건 내가 또 그대 힘들겠다알아주잖여.”

우리 모두 애쓰는 생이라.

욕봤다, 그대여! 욕본다, 그대여!

 

한바탕 일을 몰아서 끝내면 쉼을 주어야지.

그건 주로 편안한 책을 들여다보거나 영화 한 편을 돌리는.

영화 <세자매>(2021)를 보다.

<소통과 거짓말>(2015) <해피뻐스데이>(2017)의 이승원 감독.

(좋아하는 배우 김선영과 좋아하는 감독 이승원의 결합-부부-은 보기에도 좋고 작품도 못잖다.)

새하얀 벽지의 신도시 고급 아파트에 사는, 큰 교회 성가대 지휘자인 가식의 첫째(문소리)

어두침침한, ‘있는 손님마저 보낼 것 같이초라한 꽃집을 하는 둘째(김선영),

헝클어진 금발 탈색머리에 거침없는 욕설의 극작가 셋째(장윤주),

그들을 보는 내내 왜 저리 사나 답답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을 넘으며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들이라기보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서 만들어진 바가 컸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사과받고 싶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잘못하고 산다.

문제는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느냐다.

나아가 치유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까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주는 재미가 컸다.

경이롭다고 말할 만한 영화였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354 4월 3일 해날 자박자박 비 옥영경 2005-04-07 1653
6353 6월 8일 불날, 반딧불 반딧불 옥영경 2004-06-11 1653
6352 128 계자 이튿날, 2008.12.29.달날. 구름 걷어내며 해가, 그러다 싸락비 옥영경 2009-01-02 1652
6351 5월 16일, 풍경소리 옥영경 2004-05-21 1652
6350 126 계자 사흗날, 2006. 8. 5.불날. 맑음 옥영경 2008-08-23 1650
6349 123 계자 사흗날, 2008. 1. 8.불날. 흐림 옥영경 2008-01-13 1650
6348 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셋 옥영경 2005-01-25 1650
6347 2006.7.30.해날 / 111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6-07-31 1646
6346 2007.11.20.불날. 얼어붙은 하늘 옥영경 2007-12-01 1644
6345 10월 18일 달날 흐림, 공연 한 편 오릅니다! 옥영경 2004-10-28 1644
6344 6-8월 여름방학동안은 옥영경 2004-06-11 1643
6343 5월 29일-6월 6일, 찔레꽃 방학 옥영경 2004-05-31 1643
6342 11월 14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4-11-22 1639
6341 6월 20일, 물꼬에 사는 작은 식구들 옥영경 2004-07-03 1639
6340 112 계자 이틀째, 2006.8.8.불날. 맑음 옥영경 2006-08-11 1638
6339 2005.10.1.흙날. 물김치독에 붓는 물처럼 옥영경 2005-10-02 1636
6338 3월 4일 쇠날 맑음, 새금강비료공사의 지원 옥영경 2005-03-06 1634
6337 6월 7일 달날, 한국화 옥영경 2004-06-11 1633
6336 1월 11일 불날, 기락샘 출국 옥영경 2005-01-25 1632
6335 2005.10.23.해날 / 2006학년도 입학 설명회 옥영경 2005-10-26 163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