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19.물날. 맑음 / 우정

조회 수 306 추천 수 0 2021.06.18 23:13:42


 

얼마 전 라디오 한 프로그램에서 읽은 시를 다시 들었다.

가객 승엽샘이 우연히 방송을 들었다며, 들려주었다.

이생진 선생님의 시 아내와 나였다.

일흔여섯의 아내와 여든의 시인,

창문을 열러 갔다 그 앞에서 우두커니 선 시인과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는 시인의 아내,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린다고.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 무어라 하겠냐 묻는다. ‘인생?/ 철학?/ 종교?’

마지막 행은 이리 맺는다.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해마다 6월이면 물꼬에서 선생님을 모시고(가객 현승엽샘도, 가끔 시인 초설도)

시를 읽고 들었다.

코로나19로 서로 오라기로 간다기도 말이 어려웠던 때라

지난해는 같이 하지 못했다.

규모를 줄여 연어의 날은 했지만.

올해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끝나지 않은 코로나 시국이라.

물꼬에서가 아니어도 한 해 한번쯤 섬을 여행하거나

서울 인사동 시모임에서도 뵙거나

더러 어느 시낭송에 모이기도 했는데

두 해가 훌쩍 그냥 흘렀다.

올 때가(혹은 만날 때가) 안 됐나 하고...”

엊그제 승엽샘의 연락이 있었고,

마침 올해 낼 책 원고의 1교를 넘겼던 차라 석탄일 끼워 말미가 있겠다 한 것.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이생진 선생님도 조금 편히 사람을 맞을 수도 있게 되신.

하여 서울 선생님 댁에서 모이기로.

얼굴 보며 무슨 말끝에 초설이 그랬네,

우리 식구잖아!”

, 그렇다. 찡했다.

같이 나이 먹어가는 일도 좋다.

우정을 나누는 일의 즐거움!

 

부처님 오신 날이다.

골짝에 깃든 몇 절에 들러 밥을 나누기도 하는데,

학교아저씨는 마을 들머리 절에 들리고 나는 서울 걸음.

이생진 선생님이 오시면 내가 거처를 내주었듯

선생님도 방을 내주셨네.

최근에 내신 책이며 몇 책에 글도 남겨주셨다.

부처님 오신 날

교장님 오신 날

生子

 

, 선생님의 시집 더미에서 한 권을 잡는다.

유일한 생존자

이것이 특혜다

선생님의 시 가운데 생자生子-살아서 시를 쓴다는 거’(無緣故; 무연고)의 한 구절이다.

공자 노자 맹자... 그처럼 당신도 를 달아보았다고,

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유일한 생존자라고.

산 자에겐 고독이 있고/ 그 고독을 갈고닦아 시를 쓰니 행복하다셨다.

살아남는 게 최고다!

살아야 기회가 있는 거니까.

살아야 억울함도 풀고 꽃을 전하고 저 푸른 숲을 본다.

살겠다. 살기로 하겠다.

여기는 방학동 이생진 선생님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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