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24.달날. 아주 가끔 구름

조회 수 321 추천 수 0 2021.06.22 23:47:39


 

그예 하다!

긴 사다리를 빌려왔고,

희중샘이 잡고 하얀샘이 올랐다.

희중샘이 마침 그러자고 온 양 큰 몸집을 잘 썼네.

새들이 햇발동 벽을 돌아가며 처마 아래로 주먹만 한 구멍을 대여섯 개 뚫어놓았더랬다.

어쩜 그리 둥근 구멍을 만들었을까, 컴퍼스도 없이, 대고 그릴 그릇도 없이.

드라이비트에 틈을 만들고 벌레가 먼저 진을 쳤을 테고,

그 벌레를 먹으려 새들이 쪼고,

구멍은 점점 커져갔더랬다.

높아서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이었고,

비가 올 때마다 걱정은 일고,

더 두었다가는 집에 미치는 영향이 크겠다고

지난겨울을 지나며 이번에는 메워야지 했다.

그러고도 춘삼월이 갔고, 4월이 가고, 5월이 가고 있었다.

6월이 오기 전에는 해야지!

적어도 장마가 닥치기 전에는 끝내야지.

이제 해야지 하고도 여러 날 비가 내려 말리느라 또 며칠이 흘렀다.

드디어 오늘 막았다!

구멍은 퍽 깊었고, 신문지를 말아 안을 채우고 외장실리콘을 쏘았다.

아직은 작으나 처마 아래 구멍 몇 개 더 보였으나

모서리 쪽이 아니라(지금 난 구멍들은 베란다에 사다리를 놓고 작업이 가능했던)

손이 미치지 못해 결국 접었다.

다른 수를 써야겠지.

 

수정과를 끓였다.

손님맞이랄까.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니 손이 갈 것도 없는 일이지만.

멀리서 사람이 들어와 있으면 잔치에 내는 뭐라도 마련하고픈.

계피는 계피대로 끓이고, 생강은 생강대로 끓였다.

생강은 한 덩어리만 있어 찧어놓았던 것도 더하고 남아있던 생강차도 더했다.

웬만큼 졸인 뒤 찌꺼기들을 걸러낸 다음

합해서 설탕이 녹을 만큼 한소끔 더 끓였다.

넣을 곶감은 같이 끓이면 지나치게 불기도 하고 수정과가 탁해지기도 하니

꼭지를 딴 뒤 다른 그릇에 담아 수정과를 부어주었다.

먹을 때마다 하나씩 건져 같이 내면 될 테다.

 

이불방의 빨래를 시작했다.

한 달 내내 할 일이다.

학교 우물가 쪽에 있던 나뭇가지들을 정리하려

운동장으로 끌어내 태울 것은 태우다. 어제 하고 남은 일이었다.

무너져 내렸던 상상아지트 지붕 잔재도 거기 모아두었는데,

그것들도 태웠다. 아직 5분지 1은 남았다.

내일도 해야지, 아니라면 또 다른 날을 엿보아야지.

본관 뒤란에 있던, 잘라놓았던 소나무 가지들 가운데

흐드렛 것들도 끌고나와 태웠다.

 

달골에서는 블루베리 알을 솎았다.

스무 그루도 되지 않는 나무인데

그것도 한 농사거리라고 시간이 좀 걸렸다.

지난해는 너무 많이 떼어 내 열매가 굵기는 했으나 아쉬움이 남았던 터라

이번에는 좀 덜 떨구었다.

세 차례 정도 한 바가지씩 수확을 할 수 있을 게다.

연어의 날 샐러드에도 잘 쓰일.

 

퍽 고단이 일고, 어깨가 왜 이리 뻑뻑한가 했더니

오전에 두어 시간 한 손빨래 때문이다.

파카며 패딩이며 겨울 점퍼며 손빨래를 했더랬다.

이제? 아니다. 딱 이맘 때 한다.

그래도 아직 한 개는 남겨두었다. 멧골 밤이 아직 그걸 필요로 하니까.

물을 먹은 것들의 무게가 여간 무겁지 않으니 뻐근할 만했다.

아직 남은 것들도 있네.

옷방에서 꺼내 한 번을 입었어도 장롱에 들어가려면 빨아야 할.

잘 갈무리를 해두어야 언제고 들어온 사람들이 잘 쓸 테다.

 

푸짐하다!”

고기도 생선도 없지만 멧골 저녁밥상이 그랬다.

상을 물리고 저녁수행을 하고,

같이들 책을 읽고 하루를 매듭지었다.

호흡은 생명의 처음과 끝, 그것을 기본으로 아침저녁 수행하고,

밥은 생명을 유지하는 일, 끼니마다 단단한 밥상을 차려먹고,

정신의 고양을 위한 책읽기, 저녁마다 책을 읽고,

무엇보다 지금 마음 좋기,

그렇게 채울 보름수행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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