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골 들어서다 흠칫 놀라다.

나무들과 창고동 건물이 달그림자를 만들자 그 사이에 난 길이 대낮같이 환했다.

낼이 보름, 벌써 둥근달이다.

 

아침수행은 자기 흐름대로들 하고, 저녁수행을 함께하고 있다.

낮에는 차를 달이고, 저녁이면 같이 책을 읽는다.

 

녹진한 아침이었다.

한바탕 비가 퍼부었다. 아침녘 내내 그랬다.

이불빨래를 밀어두고 아이들 뒷간 건너 창고를 정리했다.

오전에 식구들이 초벌청소를 해두면 오후에 재벌청소로 내가 들어갔다.

늘 들여다보는 곳이 아니라 행사가 있기 전 먼지를 터는 곳이다.

그런데 바깥식구들이 이 살림에서 버리고 남길 것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정 앞두고는 그걸 하러 들어갈 짬이 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늘 쓸고 닦는 일까지만 진행되기를 반복해왔던 곳.

한 해 한 차례나 아니면 두세 해만에야 겨우 하는 정리였다.

오늘이 날.

아직도 철로 된 식판이 있었다. 오래 오래 전 계자에서 썼지만,

쓸 일이 오지 않겠다.

쇠그릇으로 밥그릇 국그릇 냉면그릇 종지들도 나왔다.

사기그릇과 유리그릇들도 있다. 내기로 결정한다.

낡은 비옷들도 버리기로 했다. 당연히, 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교무실 초벌청소도 했다.

그렇게 하고나면 책상에 쌓인 것들을 정리하게 될.

 

부추를 잘라오다. 식구들이 모여 다듬었다.

부추김치, 부추겉절이, 부추부침개, ...

마침 들어온 토마토가 있어 낮밥상에는 파스타가 올랐다.

후식으로 어제 만들어둔, 곶감을 넣은 수정과를 마셨다.

 

사이집 본체에다 덧댈 북쪽 현관과 남쪽 베란다를 설계하다.

대단한 건 아니고 대략 그림을 그린.

작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지난 21일 준공처리가 되었고,

취득세고지서 아직 날아오지도 않았고 그래서 등기도 신청하지 않았지만

겨울이 서둘러 오는 이 멧골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가을에는 기술자도 구하고 자재도 들이고 일이 될.

 

어미는 새끼보다 먼저 죽고, 어미가 쓰는 말은 새끼보다 오래되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 왔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순조롭고 공평한 접대, ...

오늘 읽은 문장들이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34 2022. 3.19.흙날. 눈 내린 대해리 옥영경 2022-04-20 364
633 2021. 9. 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1-10-28 364
632 2021. 6.15.불날. 비 옥영경 2021-07-07 364
631 2020.12.21.달날. 먼 산에서 묻어오는 눈 옥영경 2021-01-15 364
630 2020.12.10.나무날. 맑음 / “맘만 가끔 물꼬에 가요...” 옥영경 2021-01-10 364
629 2020.10.11.해날. 흐릿 / 흙집 양변기 작업 시작 옥영경 2020-11-22 364
628 2020. 7.30.나무날. 억수비 작달비채찍비 장대비 창대비, 그리고 갠 오후 옥영경 2020-08-13 364
627 2024. 3.23.흙날. 살짝 비 옥영경 2024-04-10 363
626 2023. 7.12.물날. 소나기 / 하는 내 말과 듣는 네 말의 간극 옥영경 2023-08-02 363
625 2023. 4.16.해날. 흐림 옥영경 2023-05-13 363
624 2022. 6. 5.해날. 비 / 보은취회 닫는 날 옥영경 2022-07-06 363
623 2022. 6. 4.흙날. 흐려가는 하늘 / ‘작은 약속을 위한 오직 한 걸음’ 옥영경 2022-07-06 363
622 2021.12. 1.물날. 갬 / 우리들의 깊은 심중 옥영경 2021-12-31 363
621 2021.10.28.나무날. 맑음 / 앞으로 확 자빠져! 옥영경 2021-12-15 363
620 2021. 8.17.불날. 오후 두어 차례 살짝 흩뿌린 비 옥영경 2021-08-29 363
619 2021. 6.30.물날. 소나기 한 차례 옥영경 2021-07-26 363
618 2021. 3. 1.달날. 비 종일 옥영경 2021-03-26 363
617 2024. 3. 9.흙날. 맑음 / 사과 한 알 1만 원 옥영경 2024-03-28 362
616 2024. 1.31.물날. 안개 내린 것 같았던 미세먼지 / 국립세종수목원 옥영경 2024-02-11 362
615 2023. 7. 8.흙날. 흐림 옥영경 2023-08-02 36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