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습이와 가습이 긴 산책.

제습이가 웃겼다. 제 오줌에 젖은 건지, 똥 누다 묻은 건지

쭈그려 앉아 볼일 본 뒤 뒷발을 풀에다 싹싹 문지르더라.

 

희중샘은 오후에 읍내를 다녀오고

물한으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그 편에도 이러저러 꾸러미 꾸러미를 들고 온.

30구 달걀까지.

시골 사는 청년의 걸음이었네.

아구, 전화를 하시지, 들머리까지야 무에 운전거리라고...

그런데 그는 지내는 동안 여기 거처가 삶터인 이들에게

무엇 하나 마음 쓰이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어찌나 살피는지.

좋은 품성의 사람이다. 또 배운다.

 

어제에 이어 뒷간 곳간 2차 정리.

제빙기와 팥빙수기는 종이상자로 뚜껑을 만들어주고.

옛 빙수기는 투명비닐을 씌워주고,

유리그릇은 얼마를 남겼다.

쓰는 날이 올까?

그렇게 있다가 그 역시 버려지는 날이 올 수도.

그래도 아직은 두기로 한다.

화채그릇에 대한 욕심이 좀 있는 거라.

 

저녁답 달골에서는 하얀샘과 희중샘이

느티나무 삼거리에 선 느티나무의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홍단풍 한 그루의 죽은 가지도 자르고,

창고동에 지난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수전을 새 것으로 바꾸었다.

 

책이 왔다.

문학 동네(출판사 이름 문학동네가 아니라 문학판)에서 같은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네.

작고하신 평론가 김현 선생님이 계셨고, 시인 김현도 있는데.

그런데 왜 나는 그 소설가는 그 이름 하나라고 생각했을까?

소설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이즈음엔 당장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면 사서 읽고 있다.

읍내가 비행기 타고 가는 길보다 먼 날들이 있다.

멧골에서 나갈 일 거의 없이 지내니.

한 작가의 책을 연도별로 챙겨 읽으려는데,

좀 낯설기는 했지만 내가 부지런히 문학 동네 소식을 챙겨 듣는 것도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것도 있겠네 하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 도착한, 한 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했던 책들 가운데

두 권은 그이의 작품이 아니었다.

같은 이름의 시인이 있었던 거다.

그저 그 소설가가 시까지 냈구나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던.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들이 많으니까.

심지어 내가 찾던 이가 아닌 그는 시집을 여러 권 낸 시인이었다. 들어보지 못했다.

듣지 못했던 이름이 어디 그니만일까!

 

저녁 9, 한 엄마와 상담.

대개 그렇듯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하나 바로 어른 자신의 이야기로 맺어지는.

부디 지금 웃으시라!

 

한밤이었는데,

5월장마가 꽤 길었고, 욕실들에 곰팡이가! 없앴다.

그리고, 말하기가 더 머쓱한데,

세면장을 하나 만들고 상판 타일의 줄눈을 여러 차례 보수.

아직도 할 부분이 있더라.

하면 되지.

뒤집어서 다시 하고 싶진 않고,

이제 손을 더하지 않고 쓰겠다고 다짐하다.

혹 나무에 물이 스며 문제가 될까 싶은 걱정이 있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성격이다 성격, 진즉에 그래도(그만해도) 되었더랬다.

타일 위에 묻은 것들 닦아내느라 어깨와 손가락이 고생 좀 했다.

어릴 적 대바늘 뜨개질을 처음 배웠을 때

한 코라도 뜻대로 되지 않은 게 있으면 떴던 양이 얼마이건 풀고 다시 하고는 했다.

그로부터 세월 많이도 흘렀는데,

내 안에는 아직 그때 그 어린 친구가 가끔 살러온다.

사람 참 안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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