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중샘과 학교아저씨는

오전에 아침뜨락에 들어 들머리 계단과 감나무 둘레 풀을 뽑고,

오후에는 계속되는 이불 빨래와 밭을 맸다.

아침 수행, 단단한 밥상을 차려 든든히 먹기,

나절가웃 일하고, 저녁에는 책을 읽는 보름 수행 중.

 

여기는 설악산 아래, 23시에야 오색발 물꼬착 문자를 넣다.

저녁 8시에 산에서 내려와 씻고 먹고 치우고 나니 이 시간이네요.

작은 사고들이 있네요.

어제 오는 길에 차 조수석 유리에 금도 가고,

고속도로에서 트럭의 돌이 튀거나 하여 그런 일이 더러 있다고.

폰 액정도 돌에 떨어뜨려 금이 가고,

산에서 스틱 한 쪽도 잃어버리고.

다 액땜하는 거라 생각함.

그러니 행운!’

 

04시 오색의 민박을 나서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로 가다.

주전골 용소폭포를 지나 십이폭포에 이를 적

뒤를 돌아보니 멀리 서북주능 쪽이 아침빛에 물들고 있었다.

현재 낡은 계단들을 보수 중이어(이런 주민의 행보가 아니면 등반객들의 방문은 제한하는)

몇 계단씩 아슬아슬하게 십이폭포 상단으로 걸음은 이어졌다.

털조팝을 시작으로 떨어진 쪽동백꽃을 밟으며 산목련꽃 아래를,

바위틈으로 부처손, 바위채송화, 그리고 멀리 개홰나무도 보며 걸었다.

옛적 오색 사람들이 이 골짝까지 와서 구들장을 떼어 갔다는 암지대를 지나

참딸기와 산딸기 숲도 지나 백두대간 망대암산에 내처 닿았다.

젖은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도 보았네.

큰앵초, 졸방제비, 박새, 지장보살나물이라고 하는 풀솜대도 넘쳤다.

처사가 부지런해야 봄에 두 번 나물 해먹는다는 홑잎도 건들고,

감자난, 큰괭이밥, 괭이눈, 벌개덩굴, 멸가치, 금망화, 미치광이풀, 오가피, 삿갓나물을 스쳤다.

국수나무를 찔레손처럼 식용했다는 옛 이야기도 시인에게서 들었다.

참나물과 당귀, 참취를 뜯기 시작했다.

점봉산을 향하며 능선 아래쪽을 훑어나간.

힘들지 않으세요?”

동행한 나물꾼 시인이 물었다.

물꼬에서 가는 겨울 산오름이 그러하지 않나.

길 없는 곳을 마구 헤집고 언덕을 기고 덤불을 헤치는.

점봉산 능선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가 나물짐을 꾸리고

(그 어디쯤에서 가방에 단 스틱을 하나 잃었네)

점봉산 정상 아래서 곰취를 한 꾸러미 엮었다.

정상에서 1km 내려오다 포수들, 혹은 마을 사람들이 나물 철에 달포를 머물며 지냈다는

막터(모듬터)에서 샘물을 긷고

단목령 방향으로 길을 계속 잡고 내려왔다.

단목령과 오색 갈림 길에서 오색 쪽 양서방고개를 지나 사시골로 내려 안터로 되돌아오다.

16km 정도 걸었나 보다.

저녁 8시였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다리부터 쉴 적,

손목에 진드기(응애인가 했는데, 그건 식물에 붙는다는)가 붙어 깜짝 놀라 털었더랬다.

씻고 나와 귀 뒤쪽이 가렵고 뭔가 불편해 긁었더니

으윽, 역시 같은 녀석이었다.

산을 내려온 뒤 씻으며 몸을 잘 살펴야!

살을 파고 든다지.

대략 열하루의 움직임이 그려지다.

하루 산 타고 하루 산 아래서 쉬면서 나물 갈무리, 그리고 글쓰기.

 

, 점봉산 높이 1,424m, 물꼬가 깃든 민주지산이 1,242m.

124로 이루어진 같은 숫자조합이라고 괜스레 더 애정이 갔더라는.

 

 

* 점봉산은 공식적으로 등산로로 개방된 적이 없으나

깃들어 사는 사람들 중심으로 산에 오르고,

지금은 금지구역이어 들머리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한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만 드나드는 길이 있어 그 길을 통해 내려오다.

* 국립공원에서 나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나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지역주민에게는 암묵적 동의 혹은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설악산 아래에서 보낼 열하루의 날들 가운데 산에 드는 날은 지역주민과 동행한다.

* 네팔 안나푸르나 군락 하나인 마르디 히말을 걷고 내려와 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공명, 2020) 출간 이후 

국내 산 이야기를 한 번 담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새로 설악산에서 사철을 보내고 그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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