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3.나무날. 흐리다 비

조회 수 308 추천 수 0 2021.07.01 23:58:30


 

아침 10시 대해리에 비 내리고 있었다.

오후에도 밤에도 비가 이어졌다.

내일이면 희중샘을 중심으로 보름동안 잡았던 수행 일정이 끝난다.

끼니마다 단단한 밥상을 차려먹고, 일을 하고,

그리고 저녁에는 책을 읽는 시간들.

희중샘은 그간 잘 먹고 지냈다고 또 황간을 나가서 장을 봐 왔다.

들어오던 날도 화장지에서부터 멧골살림에 요긴한 것들을

이미 부엌에 잔뜩 채워준 그였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웠다지.

아이들이 자라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샘들이 되고,

물꼬에 올라치면 멧골 살림을 헤아려 저들 먹고 쓸 것들을 그리 실어 나른다.

저들은 어찌 저런 청년들이 될 수 있었을까!

 

여기는 설악산 아래 사흘째.

고맙기도 하지.

물꼬를 벗어나도 물꼬 하늘의 그늘이다.

절묘한 날씨라. 어제 산 타고 오늘 쉬어간다 하였더니

비가 찾아와주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출판사에 보낸 이번 책의 2차 교정 원고 가운데

맘에 걸리는 한 부분을 다시 손봐 보내다.

이번 책의 일부 배경이 되는,

지난해 봄학기 특수학급 담임을 맡았던 분교의 교장샘께 메일도 보내다.

등장하는 학교이름에서부터 아이들 이름도 가명이나

혹 걸릴 부분은 없는가 하고.

교정 중인 원고를 보낸 것. 감수 차원에서.

 

손님이라고는 없는 민박집, 어디 있으나 거하는 곳이 내 집이라,

주인 할머니는 마실을 갔고,

밥을 해먹고 거실이며 부엌을 한바탕 치웠다.

어제 뜯은 나물들 일부를 당장 먹을거리로 간장장아찌를 담았다;

당귀참취곰취명이.

나머지는 주인 할머니를 드렸네.

“아이구, 고생하고 뜯은 걸...

당신도 10년 전에 대청봉 아래 가서 나물을 뜯어보셨더라며

힘든 줄 아노라 여러 번 곱씹으셨다.

얼마나 많은 나물들이 있는지 눈으로 보고 온 터라.

천천히 물꼬에 가져갈 것을 챙겨도 되리.

명이는 비싼데...”

울릉도 명이나물과 견줄 게 아니라지.

여기서도 밭에서 키운 것들과 구분하여 산에서 얻어온 건 비싸게 거래가 된다고.

고백하자면, 향이 강한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나는

맛도 모르고 약이겠거니 먹는 걸.

 

저녁에는, 양양 읍내에서 이른 아침 들어오는 대신

이 민박에다 방 하나를 빌린 나물꾼 시인이 들어왔다.

어제처럼 내일도 동행할 길잡이라.

주인할머니와 이미 잘 아는 사이들이었다.

식구처럼 같이들 밥을 해먹었다.

참나물로는 부침개를 부치고,

순한 당귀 명이 참취 곰취에다 천삼덩굴을 더해 샐러드도 내고,

낮에 담근 장아찌도 당장 꺼내 먹다.

내일은 새벽 4시 일어나 아침을 먹고 대청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들꽃 공부와 나물 채취가 같이 있는 산오름이 이어질.

설악산 아래 깃들어 하루 걷고 하루 쉬는, 열하루살이가 될.

 

* 국립공원에서 나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나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지역주민에게는 암묵적 동의 혹은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설악산 아래에서 보낼 열하루의 날들 가운데 산에 드는 날은 지역주민과 동행한다.

* 네팔 안나푸르나 군락 하나인 마르디 히말을 걷고 내려와 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공명, 2020) 출간 이후

국내 산 이야기를 한 번 담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새로 설악산에서 사철을 보내고 그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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