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둔 달골에 학교아저씨가 오전에 올랐더란다.

아침뜨락 들머리의 성황당 같은 감나무 아래 풀을 좀 잡아 달라 부탁드렸더랬던.

 

일단 충분히 쉬었다.

어제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해

한계령-끝청-중청-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계곡으로 20km를 걸었다.

길을 벗어나 산꽃 보고 나물 뜯고,

끝청에서부터는 내리 등산로로 걸었다.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이레째.

 

일흔아홉 민박집 주인 할머니는 쓸고 닦고 하는데 게으르지 않으시지만

그래도 나이 들면 눈도 어둡기 마련.

방마다 쓰레기통 뚜껑이며 곰팡이 슨 곳들이 적잖았지.

죄 꺼내 씻고 말리고.

부엌에도 후미진 곳들을 닦아내고 마당의 구석진 곳도 쓸고.

물꼬에서라면 지금 하고 있었을 일들이었다.

어디라도 내 깃든 곳이면 내 집이리.

 

어제했던 산나물을 또 주인네 나누고,

참취는 데쳐서 냉동실로 넣었다.

그러면 내내 된장만 넣고 끓여도 좋은 찌개가 된다지.

(나물 데친 물도 같이 넣어 얼린다는 걸 그제야 알았네)

나물을 뜯고 파는 일이 생업인 시인에게

이번 참에 뜯은 나물을 더해 택배를 부탁하다.

재작년부터 내 책을 내고 있는 두 출판사에 나물을 보내다.

더하여 지난해 봄학기를 보낸 제도학교에도.

그곳 교장샘께 이번 책 원고를 보냈더랬지, 혹 문제가 될 부분은 없겠는가 감수 차원에서.

별 걸리는 건 없다는 답메일을 받았다.

 

책은 내는 날이 가까워오고,

다시 낼(후 내년이 되겠다) 책을 위해 설악산을 걷는 중.

네팔 안나푸르나 군락 하나인 마르디 히말을 걷고 내려와 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공명, 2020) 출간 이후

국내 산 이야기를 한 번 담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던 차.

그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새로 설악산에서 사철을 보내고 그러고자 하는.

오색을 근거지로 움직이는, 나물꾼 시인이 아니었다면

이번 길이 이리 일찍 성사되지는 않았을 게다.

이 모든 좋은 인연줄은 모다 물꼬 덕인가 한다.

오전에 올랐던 대청봉을 오후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는 시인,

어제 올랐던 점봉산을 오늘 다시 오르는 그였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고, 산꽃에 해박한 그는 이번 길에 훌륭한 안내자.

아직 등산 스틱이 내 손에 오지 않은 바

어제는 그의 스틱이 내게로, 내 외다리 스틱은 그에게 가서

두 다리가 그나마 성했다.

거듭 고마운.

 

밤에는 오색터미널로 나갔다.

거기 오색의 젊은 축들이 가게 앞 테이블에서 곡주 한 잔씩들.

대개 부모들이 하던 가게와 민박집을 이어하고 있었고,

더러 서울과 연결된 다른 일들도 맡아하고 있었다.

이제 오색의 또래들도 만났더라니.

나도 장떡 좋아하는데...”

산나물로 이러저러한 찬을 만들었다 하였더니

가게 여주인이 구리대와 참나물 들어간 장떡을 좋아하지만

그거 해먹을 시간이 없다나.

다른 날 그거 놓고 둘러앉자 하였네.

 

내일은 순전히 산나물 뜯는 것만을 목적으로 다시 점봉산을 오르고,

모레는 공룡능선 쪽으로 이십여 킬로미터를 내처 걸으려 한다.


 

* 국립공원에서 나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나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지역주민에게는 암묵적 동의 혹은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설악산 아래에서 보낼 열하루의 날들 가운데 산에 드는 날은 지역주민과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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