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옴()()의 맥문동을 멧돼지가 헤집어 놓았더라지.

오후에 물꼬에 들른 준한샘이 사진을 찍어 보내왔네.

학교아저씨에게 다른 날엔 그것부터 좀 심어 주십사 문자를 보냈다.

 

설악산 아래서 여드레째.

오색에서 마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을 따라 다시 점봉산으로 향하다.

순전히 나물 뜯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오늘 산오름이다.

등산로는 개방되어 있지 않다.

예전에도 개방된 적이 없다 했다.

들머리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CCTV를 달아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피해 길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내처 길을 타고 올랐고,

가끔 다리쉼을 하며 돌아보니 아침빛이 번지고 있는 너머

구름인 양 바다가 펼쳐졌다.

처녀치마와 오이풀이 자주 보였다.

오이풀이 향이 없다 싶더니, 여름날 뙤약볕에서 향을 낸다던가.

막터부터 들리자 했다.

아니면 점봉산 바로 아래 나물밭으로 바로 갔을.

지난번 점봉산행에서 내려오며 샘에서 물을 길었던 곳.

막터(모듬터)는 옛적 나물 철에 마을 사람들이 열흘이고 스무 날이고 지냈다는 곳.

포수들도 쓰고.

물 가까이, 나물도 많은 그곳에 온돌 깔고 먹고 잤다는.

나물을 뜯어 거기서 데쳐 아침마다 아비들은 마을로 져다 날랐다지.

빨래도 거기서 해서 입었겠지.

누구네 땡땡이 무늬 몸빼가 흙 속에서 살짝 낯을 보였다.

너머로 바로 나물을 뜯기 시작하다.

참취가 퍽도 좋았다.

 

소나기가 두어 차례 지났지만 잠깐이었다.

그런데, 앗뿔싸! 그간 운이 좋았던 거다.

벌레를 많이도 타서 연고를 꼭 챙기는데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짐을 꾸렸네.

비가 지나서였나 보다,

얼굴이고 손목이고 드러난 살을 마구 뜯겼다.

예정으로는 2시쯤 내려와 읍내를 다녀오려 했는데,

손전화의 깨진 액정도 갈고 차츰 더 번지는 차의 금 간 앞 유리도 바꾸고 올랬는데,

아직 배낭이 덜 찼다.

오늘쯤의 나물은 물꼬로 가져갈 장아찌를 담는 것.

데쳐 말리기도 할.

물꼬를 떠나올 때 큰 김치통 두 개를 차에 실어왔더랬지.

 

나물들끼리 서로 닿아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한 묶음씩 묶었던 걸 두어 차례 꺼내 바람을 쏘이고

살짝 숨이 죽은 걸 차곡차곡 다시 넣었다.

그러면 또 공간이 생겼고, 다시 나물이 배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나물을 꾸렸을 무렵

얼굴에서부터 여기저기 물린 자국이 붓기 시작했고,

급기야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단목령과 갈라지는 곳에서 오색으로 내려서서 양서방 고개를 내려올 무렵

앞서가던 시인이 당신 짐을 내려놓고 되돌아와서 내 배낭을 좀 들고도 가려는데,

산에서 가장 중요한 동료로서의 자세는 제 짐은 제가 지는 것.

마다하고 계속 걸었다.

저녁 7시 마을에 이르렀네.

 

, 오색터미널로 약을 사러 나섰다.

이마며 눈두덩이 부어서 말이 아닌 꼴이었다.

가는 걸음에 그래도 장떡을 부쳤다.

터미널 가게 안주인이 먹고 싶다던, 구리대와 참나물과 산초 잎도 다져넣은 그 장떡.

마침 엊저녁 남은 반죽이 있었던.

두 장을 붙여다 건넸네.

 

내일은 공룡능선을 타려 한다.

혼자 갈 길이다.

내리 사흘 산오름인데,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20km 정도의 길을 잡았고, 짧게 잡아도 17~8km는 될.



* 국립공원에서 나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나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지역주민에게는 암묵적 동의 혹은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설악산 아래에서 보낼 열하루의 날들 가운데 산에 드는 날은 지역주민과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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