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10.나무날. 맑음

조회 수 320 추천 수 0 2021.07.07 23:12:08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예취기를 돌리기 전

손으로 해야 할 곳들 풀을 뽑고 있었다,

나무 둘레랄지, 길 가장자리랄지.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열흘째.

엊그제 점봉산 나물밭에서 벌레에 쏘여 

퉁퉁 분 이마와 눈 한 쪽과 귀 언저리가 가라앉질 않는다.

어째 더 붓는 듯한.

팔다리 여기저기도 말이 아니네, 드러난 곳도 아니었는데.

 

여러 날 깃들어 지내니 이곳도 또 물꼬 같았네.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이지요, 라고들 하더니

물꼬 인연 하나 스며들어 하룻밤을 묵는다.

그릇만 다르고 물꼬 밥이네요.

밥상 앞에서 그가 말했다.

우리 집 부엌같이 쓰고 살았다.

다른 객이 없는 민박집.

주인집 할머니도 아침부터 집을 비워 더욱 주인 같았던.

어느 날은 마을 어른들이 모여 자정까지 화투를 치셨더라지.

잠도 못 자고 일을 했으면 돈을 벌어와야지요!”

하루는 땄다시기에 나도 용돈을 달랬더니 여러 장의 지폐를 꺼내셨네.

천 원 한 장을 가졌더랬다.

할머니의 용돈이라.

 

새벽같이 방을 치우고 벽지를 바를 준비를 하다.

민박집에 들어서던 날, 방 하나에 딸린 수도가 터져 물바다였더라지.

1인용 침대방을 주시기 그냥 벽이 젖은 그 방 나 달라하였네.

상을 들여 랩탑으로 작업도 해야 해서.

읍내 가서 벽지며 사와 혼자 도배를 한다시기

기다려보시라 함께하자 하였던.

오늘이 날이었다.

아니, 어떤 손님이 도배를 다 해주고 간대?”

이웃집에서들 건너와 한 마디씩.

그러게요. 주인이 얼마나 잘해주었으면 객이 도배를 다 해준다나요!”

그간 이를 뽑아 틀니를 준비하시느라 죽만 겨우 드시고 계셨던 주인 어른,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다 먹으라 내게 챙겨주셨더랬다.

아침 일찍 나서면 치즈를 쥐어주기도 하시고.

때마다 밥 잘 지어먹고, 산오름 도시락도 싸고,

우리 집 부엌같이 썼다.

떠나오기 전 읍내서 그간 썼던 것들(장아찌도 그 댁 양념들로 썼던) 채워드렸네.

잊지 않고 냉동실에 데쳐 얼려둔 취나물 다섯 주머니와

데쳐 말린 취나물 한 보따리와

간장장아찌 담은 산나물 두 통을 잘 실어 나왔네,

9월에 다시 들리마 하고.

 

남은 하룻밤은, 민박집을 나와 양양 바닷가 편안한 객실에서 묵는다.

내일 외설악 쪽을 더 기웃거려 보려고.

편히 잘 씻기도 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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