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10.나무날. 맑음

조회 수 319 추천 수 0 2021.07.07 23:12:08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예취기를 돌리기 전

손으로 해야 할 곳들 풀을 뽑고 있었다,

나무 둘레랄지, 길 가장자리랄지.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열흘째.

엊그제 점봉산 나물밭에서 벌레에 쏘여 

퉁퉁 분 이마와 눈 한 쪽과 귀 언저리가 가라앉질 않는다.

어째 더 붓는 듯한.

팔다리 여기저기도 말이 아니네, 드러난 곳도 아니었는데.

 

여러 날 깃들어 지내니 이곳도 또 물꼬 같았네.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이지요, 라고들 하더니

물꼬 인연 하나 스며들어 하룻밤을 묵는다.

그릇만 다르고 물꼬 밥이네요.

밥상 앞에서 그가 말했다.

우리 집 부엌같이 쓰고 살았다.

다른 객이 없는 민박집.

주인집 할머니도 아침부터 집을 비워 더욱 주인 같았던.

어느 날은 마을 어른들이 모여 자정까지 화투를 치셨더라지.

잠도 못 자고 일을 했으면 돈을 벌어와야지요!”

하루는 땄다시기에 나도 용돈을 달랬더니 여러 장의 지폐를 꺼내셨네.

천 원 한 장을 가졌더랬다.

할머니의 용돈이라.

 

새벽같이 방을 치우고 벽지를 바를 준비를 하다.

민박집에 들어서던 날, 방 하나에 딸린 수도가 터져 물바다였더라지.

1인용 침대방을 주시기 그냥 벽이 젖은 그 방 나 달라하였네.

상을 들여 랩탑으로 작업도 해야 해서.

읍내 가서 벽지며 사와 혼자 도배를 한다시기

기다려보시라 함께하자 하였던.

오늘이 날이었다.

아니, 어떤 손님이 도배를 다 해주고 간대?”

이웃집에서들 건너와 한 마디씩.

그러게요. 주인이 얼마나 잘해주었으면 객이 도배를 다 해준다나요!”

그간 이를 뽑아 틀니를 준비하시느라 죽만 겨우 드시고 계셨던 주인 어른,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다 먹으라 내게 챙겨주셨더랬다.

아침 일찍 나서면 치즈를 쥐어주기도 하시고.

때마다 밥 잘 지어먹고, 산오름 도시락도 싸고,

우리 집 부엌같이 썼다.

떠나오기 전 읍내서 그간 썼던 것들(장아찌도 그 댁 양념들로 썼던) 채워드렸네.

잊지 않고 냉동실에 데쳐 얼려둔 취나물 다섯 주머니와

데쳐 말린 취나물 한 보따리와

간장장아찌 담은 산나물 두 통을 잘 실어 나왔네,

9월에 다시 들리마 하고.

 

남은 하룻밤은, 민박집을 나와 양양 바닷가 편안한 객실에서 묵는다.

내일 외설악 쪽을 더 기웃거려 보려고.

편히 잘 씻기도 하였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194 2021.10.18.달날. 맑음 / 힘이 나서 뭘 하는 게 아니라 옥영경 2021-12-09 341
6193 2021.12.16.나무날. 짧은 해 옥영경 2022-01-08 341
6192 2022. 3. 8.불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341
6191 2022. 4.29.쇠날. 흐림 옥영경 2022-06-09 341
6190 2022. 6.21.불날. 가끔 먹구름 드리우는 옥영경 2022-07-11 341
6189 2022.10. 5.물날. 비 흩뿌린 오전, 갠 오후 옥영경 2022-10-19 341
6188 2022 겨울 청계 닫는 날, 2022.12.25.해날, 맑음 옥영경 2023-01-06 341
6187 2023. 3.29.물날. 맑음 / 남을 자꾸 때리는 아이 옥영경 2023-04-26 341
6186 2021. 3.19.쇠날. 흐림 옥영경 2021-04-27 342
6185 2021. 5.25.불날. 장대비 내린 뒤 긋다 옥영경 2021-06-22 342
6184 2021. 9.14.불날. 구름 좀 /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간다? 옥영경 2021-11-14 342
6183 2021. 9.24.쇠날. 맑음 옥영경 2021-11-24 342
6182 2021.11.23.불날. 흐림 옥영경 2021-12-29 342
6181 2022. 7.27.물날. 몇 차례 먹구름 / 경제적 이유 때문에 못 보낸다 하셔놓고 옥영경 2022-08-07 342
6180 2022.10. 4.불날. 오전 비, 오후 흐림 옥영경 2022-10-19 342
6179 2022.10.20.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2-11-11 342
6178 2024. 1.17.물날. 비 옥영경 2024-01-29 342
6177 빈들 닫는 날, 2020. 4.26.해날. 맑음 옥영경 2020-08-04 343
6176 2021. 3.28.해날. 갬 옥영경 2021-05-05 343
6175 2021. 7.2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1-08-10 34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