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17.나무날. 갬

조회 수 350 추천 수 0 2021.07.10 03:21:52


 

늦은 아침 뽕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잠시 앉았다.

낮에 전화기를 드는 일이 잘 없다.

목장갑을 벗는 일이 거의 없는 낮이라

대체로 통화는 저녁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기록장까지 들고, 오후에 나갈 움직임에서

되돌아오거나 헤매는 일이 없도록 기관에 전화를 넣어 관련서류들을 미리 살피는데,

그 잠깐이 뭐라고

내가 맨날 싸우는 그 풀도 싱그러움으로 오고,

벌 한 마리 키 큰 토끼풀 끝에 붙었고

이름이 짐작되지 않는 새소리 벌레소리 넘치는데,

바람도 구색처럼 불고

사는 데 참 별 거 없다, 이 평화면 되었다,

그리 어려울 거 아니다, 그저 당면한 일을 하며 살아가본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한 벗을 생각했다.

말해주지 않으니 모르겠는 까닭으로 올해를 고군분투하며

겨우 숨 한 번 뱉듯 내년에 보자는 문자를 남기고 소식 없는 그니.

내가 가장 어려웠던 시간에 그 시간을 짐작하며 내게 글월을 보냈던 그이로

나는 그 무섭기까지 했던 시간을 건넜는데,

나는 그저 그를 기다리고, 혹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리라는 마음만.

이 평화를 잘라 그에게 보낸다. 부디, 부디 평안하시라.

 

읍내 나가서 볼 몇 군데의 일을 두고

움직임을 단단히 그렸다고 여유를 너무 부렸나 농협에 이르니 16,

막 문을 내리고 있었다. 이런!

농협-군청-법원으로 이어질 길인데, 여기서부터 어그러지면 또 언제 나오나,

막막히 섰더니 직원들이 움직여주었다.

첫 일을 잘 마치고 군청으로 달려가 준공 관련 취득세며 등기 관련 서류들을 챙기는데

여러 창구가 또 같이 서둘러주고,

법원에서는 17시에 마감한다는 농협창구에서 또 기다려들 주고.

시골이 또 이런 게 좋다. 그렇다고 늘 이러리라 기대는 안 하기로.

등기소에서는 군청을 다시 가야할 일 없게 맡은 이가 팩스로 받아 서류를 다 챙겨주었네.

친절들도 하시지.

!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도왔으나 마지막 관문에서 딱 하나가 걸려버렸다.

다시 당장 읍사무소도 달려갔지만 그건 그곳이 아니라 우리 면사무소로 가야만 하는 일.

다 준비되셨으니 천천히 영동에 나오실 때 면에 들렀다 이대로 들고 오시면 됩니다.”

 

녹초가 되어 면소재지를 지나오다가

저녁 대신 장순샘과 시원한 맥주 하나 놓고 앉았더라지.

냉해를 심하게 입은 과수 농사의 전말을 들었고,

손이 다쳐 고생한 이야기도 듣다.

물꼬 밭이거니 하고 손발을 보태왔던 그의 농사,

올해는 각자 살기 바빴네.

사람들을 보지 않고 사는 동안에도 그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옴작거림이 있었겠는지.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애쓰고 산다!

 

연어의 날 마감을 알리고도 여럿의 소식을 듣는다.

이리 일찍 마감될 줄 몰랐다며

혹 못 오는 이가 생긴다면 바로 연락 달라는 메일도 읽었다.

너무 그립노라고, 힘겨운 날들을 연어의 날만 바라보고 견뎠다는 다른 글월도 있었다.

연어의 날이 그런 날인데, 못 봐도 한해 따숩게 한 번 얼굴 보자는 자리.

어쩌나. 이미 서른. 규모가 부담이 된다.

밥이 걱정이겠는가, 백 명도 모였는 걸.

여전히 코로나19의 시절, 우리 좀 더 모여도 될까....?

그립다, 벗이고 동지이고 동료인(아이들도 물론) 물꼬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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