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안내지를 흔히 보면, 특히 그것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경우

우천 시라는 표현을 본다.

비올 때’, 그러니까 비가 오는 날씨일 때 어찌 하겠노라는 말이다.

우천(雨天), 그것을 나는 하늘의 뜻이라고 읽고는 했다.

물꼬에서는 비가 와서 행사를 멈춘 일이 없었다.

그건 비가 와도 할 만한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날씨가 좋았던 경험들 때문이기도 할 게다.

물꼬 사람들은 그것을 물꼬의 절묘한 날씨라고들 했다.

19956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이듬해 추모공연을 할 때도

서울 시내 수십 년 된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간판이 떨어져 날아다니는데도

추모행진으로 아이들과 말짱한 서초대로를 걸었고,

삼풍 현장에서 살풀이춤도,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추모행사도 무사히 치렀다.

최근 십여 년 물꼬에서 하는 6월 행사만 해도 비가 추적인 날이 없던 것도 아닌데,

비가 내린다는 생각을 않는다. 장마도 가까운데.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잘 대처할 거라는,

즉흥에 강한 물꼬 야전(野戰)의 시절이 쌓아준 덕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이 돕지 않겠는가, 도와주시라, 그런 간절함이 닿을 거란 턱없는 생각도.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내렸다지.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지내니까.

뭐 그런 심정이다.

아침에 비가 내렸다.

10시께 그었다. 고마웠다.

 

연어의 날을 앞두고 달골에 먼저 들어와 계시던 시인 이생진 선생님 포함

세 어르신들이 학교로 내려왔다.

아침 9시 밥을 먹기로 했더랬다.

저어기 신안의 한 섬에서부터 5시간을 넘게 운전해 하룻밤 먼저 들어왔던 화목샘도

충분히 쉬고 10시께 내려왔다.

밥상을 물리고들 마당에 그늘막부터 쳤다.

서현샘이 행사 알림 펼침막을 준비해주겠다 했으나 마다했더랬다.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때가 때이라 동네방네 소문내고 모일 것도 아니라.

그래 놓고도 대문에 하나 걸면 좋겠다는 마음이 또 드는 거라.

 

학교 부엌을 뒤집고 먼지를 털었다.

뜨거운 물로 수저부터 끼얹고 낮밥을 준비했다.

가마솥방 안 다육이들에겐 손이 못 갔다.

털어버렸다. 무리하게 하기보다 마음을 놓는 쪽으로.

먼지와, 분갈이를 못해준 것들과, 웃자란 줄기들이 눈에 자꾸 거치적거렸지만.

이런 일이 많아졌다. 나이 들며 서서히 움직임이 더뎌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된다는 걸 알 게 된 거다,

일찌감치 윤지샘부터 들어왔다. 교무실 청소를 맡겼다.

우리 오랫동안 물꼬에서 그리 호흡을 맞춰왔더랬다.

초등학교 아이가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이제 자가용을 운전해서 물꼬까지 들어온다.

기표샘도 생애 첫 차를 가지고 들어왔네.

 

정오, 시골 노모 집에 대처 자식들이 모이듯 연어들이 거개 닿았다.

국수를 비벼먹었다.

밖에서는 이웃마을 남석샘이 건너와

숨꼬방 앞 차양의 기둥 둘에 녹을 긁어내고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모두 잠시 쉬고 수행방에들 모였네. 인사를 나누고, 일을 나누었다.

저녁 7시가 중심행사이니 그 전까지는 행사준비가 될 게다.

휘령샘이 그랬다, 윤실샘이 같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전엔 그저 막무가내로 했다면 일에 차례가 생기더라고.

윤실샘 역시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 새내기에서 학교 교사가 되고

두 아이를 키우며 물꼬 품앗이에서 논두렁이 되었다.

그가 후배에게 몸으로 일머리를 알려주고 있었다.

고래방에선 기표샘 희중샘 화목샘 들이 바닥이 무너져 내린 한 쪽을

안전하게 여러 가지 물건들로 막고 있었다.

물꼬 수영장으로 쓰는 계곡까지 가자면 이 더위에 일이라

올해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동쪽 개울을 써보면 어떨까 하고

고래방 뒤란에서 우물 지나 그곳으로 가는 풀도 베고 있었다.

인서네는 마당에 텐트도 쳤네.

땀이 비 오듯 내리는 속에 수시로 가마솥방으로 달려와

식혜와 수정과와 냉커피와 물들을 마셨다.

아이들도 어른들 곁에서 더러 일을 거들거나 놀거나.

 

사람들이 부려놓은 것들이 부엌곳간에 쌓였다.

이생진 샘 일당(ㅎ)들이 들고 온 아주 커다란 화장지 꾸러미에서부터

이미 준한샘이 보낸 참외 상자가 들어와 있었고,

택배로 진주샘과 진효샘이 보낸 국수 상자와

화목샘이 실어온 막걸리 한 상자와 아주 아주 커다란 망에 꽉꽉 채워진 양파,

윤지샘이 소주 상자에 더해 골뱅이와

지역에서 유명한 국수라며 한아름 싣고 올 때마다 빼놓지 않는 만두까지 내려놓았다.

맡은 몫도 컸는데, 보태 온 선물이 더 많았다.

수박이며 식빵이며 우유며 잔뜩 실어온 희중샘,

캔맥주 두 상자는 기표샘이 맡았다.

진화샘네가 페트 맥주를 두 상자 부려놓고,

그 안주는 인교샘이 가져오기로 했더랬네.

, 그 다양하고 맛난 치즈를 우리가 어디에서 그리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을 거나.

아이들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는 현준이네가 맡았다.

원두커피를 맡았던 휘령샘, 메론을 한 상자 더해서 왔다, 쿠키까지.

잔치 잔치라.

사실 미리 조율을 좀 했더랬다.

차편에 오는 이들에겐 무거운 걸 맡긴다거나 하는.

택배라는 방법도 있더라.

, 내 책을 내고 있는 출판사에서도 다식거리가 왔다.

물꼬 중앙에서는 바람떡을 했더랬네.

(* 연어의 날에 바삐 오느라 빈손이었다고

여러 날 뒤 재훈샘으로부터 헤어드라이어기가 두 개 왔다. 달골과 학교에 쓰라고.

가끔 사람들이 찾는다는 말을 듣고는.)

 

저녁밥상이 차려졌다.

멧골 집밥이 주제였다, 산나물비빔밥을 생각했다가.

점주샘과 인교샘을 중심으로 그야말로 집밥을 차렸다.

윤실샘네와 점주샘네와 태희샘네에서 들어온 반찬까지 더해져.

얼마 전 설악산에 들어가 꺾어 담았던 산나물장아찌며 아이들을 위한 떡볶이까지.

이날을 위해 마련했던 참외장아찌는 놓을 자리가 없어

내일 아침 콩나물국밥과 함께 내기로.

“12첩 반상이네!”

단단한 밥상이었다.

이 밥 한 번 먹자고 우리 모였다.

 

저녁 7시 고래방에서 이생진 선생님이 자리를 여셨다.

아흔셋 어르신이 당신 제자인 가객 승엽샘과 무대에 서서

음악을 배경으로 시를 읊고 축하 인사를 했다.

물꼬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으셨다.

늘 배운다, 배울 게 많은 물꼬라 당신이 오고 또 온다셨다.

애쓴 흔적들을 봐주신 밝은 눈도 고마웠다.

그런데 이번 연어의 날 주제를 아셨던 것도 아닌데

서로 맞춘 양 당신 말씀 주제가 ‘My way’였다.

일찍이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도 마지막을 채웠던 문장,

네 자신의 길을 가라, 누가 뭐라든!

승엽샘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도 불러주셨네.

그때 고개를 들어 고래방 안으로 죽 훑어보는데,

, 여름 날 바깥 너른 들 어디에 쳐놓은 가설무대 같았더라.

무너진 마룻바닥을 막자고 세워놓은 집기들이 말이다.

곳곳에 만장처럼 펼침막이 펄럭이고

세상 온 곳에서 달려온 이들이 모여 만드는 공연장,

신비했고, 벅찼다.

이어 사람 책을 펼친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까지.

우리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를 물었다.

수고롭지 않은 생이 없을 지라!


진주샘은 적어온 글을 읽었다;

저에게 물꼬는  소중합니다.

걸친 보다 건강한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비싸고 삐까뻔쩍한 집보다 

낡고 허름하지만 깨끗한 집에 살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고,

 몸을 움직여 수고로이

밥을 먹는 행복함을 경험하게 해주었고,

보이기 식보다 즐기는 마음이 중요함을 느끼게  주었습니다.

 산을 타며 삶을 배우고

위로받는 그래서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힘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런 물꼬가 저는  소중합니다.

그런 씨앗을

그런 마음을

그런 가치관을

지키고 싶습니다!

 

곧 밖에서 기표샘과 화목샘 희중샘이 마당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웠다.

여름밤이 내리고 있었다, 사람의 말을 다 삼키며.

불 앞에 같이 둘러서 있자니

오지 않은 미래가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을 법도.

가마솥방으로 발을 옮겨 夜(야)단법석이 이어졌다.

아이들 포함 서른다섯(, 남석샘까지 더하면 서른여섯)이 모이기로 했고,

두 아이와 영국인 한 친구가 오지 못해 서른셋.

첫걸음한 용욱샘과 혜지샘도 있었다.

서현샘이 시월에 혼례를 올리는 짝궁 용욱샘과 동행했고,

초등학교 교사인 혜지샘은 전문가용 사진기를 들고 이번 일정을 담아주고 있었다.

넘치는 이야기와 넘치는 잔과 넘치는 노래들이 별 없는 밤을 반짝이게 했다.

 

계자에서처럼 여자방과 남자방으로 모둠방을 쓰기로 했지만

책방의 어른 공부방을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불가나 마당이나 가마솥방 불이 밤새 꺼지고 않고 있었다.

반딧불도 밤새 바빴더라.

오늘도 물꼬의 날씨는 절묘했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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