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 눈을 비비며 사람들이 밥상으로 모였다.

홀딱 밤을 새운 이들도 있었다.

밥을 하러 들어섰더니 말꿈하게 정리된 부엌이었다.

아침에 밥바라지가 부엌을 들어섰을 때 밥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우리가 언제나 일정을 진행할 때 외치는 말대로.

품앗이샘들이 설거지를 빛나도록 해놓았다.

오래 전 6월 행사에

바깥의 평상이며 가마솥방 식탁에 널브러진 술자리가 그대로 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날이란 없다.

간밤에만 해도 기표샘이며 우리 정리 한 번하고 다시 앉자.”

중간정리도 하고 지나가던 (야단)법석이었더라.

 

아이들이 늦게 일어났다.

달골로 향하기로 한 시간이 임박해서였다.

야삼경 지나도록 말을 거는 멧골의 벌레들 아니어도

흥으로 잠을 부를 수가 없었을 테다.

우리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을 한다고 애들 밥도 안 멕이고 나설까.

시간을 좀 늦출게요. (너들) 밥 먹고 나면 갈게.”


하늘의 절반이 먹구름을 이고 있었으나 맑았다.

학교 밖으로 나서는 거니 모두 마스크를 꼈다.

이미 해가 중천이라 더울 만한데

바람이, 제법 선선한 바람이 우리를 휘돌았다.

달골 대문 앞에 서자 그늘과 바람이 선물처럼 안겼다.

한숨 쉬고 달골을 들어서자 창고동 벽화가 먼저 맞았다.

측백 기념비 앞에 다음 걸음을 또 쉬었다.

측백을 심은 이들은 제 이름자들을 찾았네.

나무를 심는다길래 그저 옷 하나 안 사입고 보낸다 생각하고 가벼이 한 그루 심었는데,

이런 기념비도 하자면 돈일 텐데 민망하기까지 하다,

달마다 후원을 해야겠다 결심을 했다는 분도 계시었네.

(그런 것에 돈을 들일 물꼬가 아니지

당신 가진 재능으로 굳이 세워주고 싶다고 나선 분이 계셨고,

준한샘이 돌과 품을 더했다.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더니, 하고 나니 잘했다 싶더라.

여태 논두렁을 위해서도, 뭔가 원을 세우고 후원을 받았을 때도

그런 거 하나 세워놓지 못했더라니.)

 

느티나무동그라미 앞에서부터 지느러미 길로 아침뜨을 들어섰다.

못다 했던 풀 정리를 엊저녁 늦게까지 하얀샘이 정리해주었다.

메타세콰이어가 심겨진 지느러미길을 지나 들머리 계단을 오르고

옴자와 오메가를 지나고 대나무 수로 끝의 토끼샘을 건너

아고라의 말씀의 자리에 이르렀다.

연애를 시작하며 여자 친구로 물꼬를 알게 되었던 영진샘은

두 아이의 아비가 되었고, 큰 애가 초등 5학년이다.

상설학교로 문을 열던 무렵 와서 손발 보태며

이게 과연 계속될까 우려가 없지 않은 속에 당시에도 획기적인 학교였는데,

여전히 훌륭한 학교라고 말했다.

초등 아이였던 윤호가 스무 살 청년이 되어서도 자기(삶의) 책을 마저 펼쳐주었고,

서현샘도 십년을 넘어 된 물꼬 인연과 역시 자기 책의 일부를 열었고, ...

 

창고동에서 차도 마시자던 계획은 접었다.

낮밥도 가까운 시간이라 배를 채울 것도 아니고,

걸음도 서둘러야 할 것이므로.

차가 있는 이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영동역까지 실어다 주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되면 정오 막 지나 마을을 나가는 버스에 서둘러 오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그건 또 얼마나 일일까.

버스 편은 버스 편으로 차편으로 차편으로들 가십사 정리해주었네.

갈무리 글 쓰는 시간을 또한 생략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접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털어버리다.

대신 여유롭게 낮밥을 먹기로.

휘령샘이 낸 메론은 밥상을 더욱 값나가게 만들어주었더라.

 

자차와 함께 남은 재훈샘 희중샘 윤지샘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을 보내고 점주샘과 둘이 하던 설거지였더라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것들이 커서 저러고 있구나 하고.

다섯 살 아이가 자라 서른에 이르기도 했네.

고단할 터인데, 오자고도 긴 걸음이었고, 가는 길도 그럴 것을.

가장 먼 길이었던 화목샘은 잘 갔을까?

 

마지막으로 윤실샘네가 학교를 나서는데,

중앙 통로에 저들 아이스박스를 내가 들자 여섯 살 윤진이가 내게 말했다,

앞서가는 엄마를 가리키며.

옥샘, 이거 엄마 주세요.”

저들 짐이니 혹 놓칠까 하고 챙기는 건가 싶었다.

윤진아, ?”

옥샘 힘드시잖아요.”

하하, 이러니 저 아이를 어찌 이뻐하지 않을까.

이 할미 힘들 걸 생각해주는 아이라니!

당신 고생하셨네, 그런 찬사로 받았더라.

 

학교며 달골에 수건이며 남겨진 빨래들을 하고,

남은 음식들까지 정리하고 낮 5시 점주샘이 마지막으로 떠나다.

청소는 내일 천천히 하기로.

오늘도 블루베리 한 바가지 수확, 벌레와 새들이 먹고 가도.

앞서 딴 것은 씻어 바로 얼려두고

오늘 건 또 한 이틀 숙성시켜 냉동실에 넣기로.

 

어느 이가 그랬지 않을까만 그 시간을 들여 이 깊은 골짝까지 와준 걸음을 생각하면,

벌어 저들 쓰고 살기도 바쁠 것을 선물까지 한아름씩 짊어지고 온 청년들을 생각하면,

겨우 스물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고도 

살림을 헤아려 등록비를 더 얹어 보내는 그 마음들을 생각하면(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당겨긴 고무줄이 제자리 찾듯 게을러진 마음을 다잡지 않을 수가 없다

전남 끝 신안에서 경남 끝 진영에서 강원도에서

거제도에서 익산에서 서울에서 청주에서 충주에서 김천에서...

애써 살겠다, 착하게 살겠다!

 

2021 연어의 날에 동행한 이름자:

김윤진 이수범 장승원 김현준 장인서 (유도윤 유정인)

이생진 현승엽 조까치 조정제 장동우 장진화 강수진 홍인교 박윤실 김영진

윤희중 강휘령 정재훈 김진주 박윤지 김진효 배기표 백서현 육혜지 이용욱

김태희 장화목 이윤호 김준한 윤남석 하점주 (G: Sidhu guneet kaur) 신영철 옥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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