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28.달날. 맑음

조회 수 327 추천 수 0 2021.07.26 23:32:32


 

평년 장마라면 61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와 중부는 23, 25.

올 장마는 예년보다 늦은 7월에 시작될 거라고.

하지만 이번 주까지 소나기가 이어질 거라 한다.

서둘러야지. 마늘밭에 들어간다. 거두는 중.

연어의 날이 끝나면 곧장 하는 일이다, 장마 닥치기 전에.

 

천천히 기숙사를 청소하다.

달골 오른 김에 말뚝 하나 갖다가 아침뜨락 들머리 감나무 앞에 박았다.

버려진 둥근 야외등을 내밀며 남석샘 더러 그림 하나 그려 넣으십사 했던.

연어의 날 녹슨 기둥을 칠해주러 오셨던 걸음에 가져오셨는 걸

아직 자리를 못 잡아주고 있었던.

그대로 말뚝 위에 짤막하게 놓느냐, 그 위로 빈 화분을 거꾸로 세워 중키로 놓느냐,

플라스틱 관이라도 세워 높이 놓느냐 고민 중.

 

아이들이 가고 나면 빚짐 같은 마음이 늘 남는다.

연어의 날은 아무래도 어른들 중심으로 돌아가기 쉬운데,

더구나 고작 하룻밤 머무는 거라

그야말로 잠시 머물다 가니 불편이 있더라도 견딜 만하겠거니 믿어버린다.

즐겁고 편안한 어른들 곁에서,

또 초록 안에서 그저 유영하기만 해도 충분하려니 하면서도.

준비하느라 종종거리다가 일정이 시작되고는 전체 진행과 밥바라지를 맡느라

대체로 아이들을 다른 어른들 편에 내맡긴다.

앞에 보이면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마음을 그리 쓰지는 못하는.

해서 돌아가고 나면 미안함으로 못내 아쉽다.

이 낡고 불편한 살림에서 아무렴 어른들보다 더 어려웠을 테지.

(어떤 상황 앞에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정작 어른들이 더 불편해야 하는 걸 보지만 말이다.

그들은 어디서나 즐겁게 놀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이니까.)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을 번쩍 드는 것은

키를 키우는 방법이다, 운전자를 향한.

작은 몸을 키워 눈에 잘 보이라고.

아이와 어른은 키만 다른 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

그림책 작가 안노 미쓰마시가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에서 원근감의 차이로 설명하듯.

멀리 떨어진 사물의 크기는 견주기가 어려운데,

아이는 어른보다 두 눈 사이가 좁으니

그 견주기 어려운 지점이 어른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

어른이 되어 어린 날 다녔던 학교 운동장을 찾아갔을 때

너무 작아 놀라는 것도 그런 공간 감각의 차이라는 거다.

그러니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감각이 다른 탓도 있을 것이다.

작은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만만찮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의 고초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라

아이들이 느낄 불편을 더욱 살펴보게 된다.

이 마음을 잘 새겨 계자 준비를 더욱 꼼꼼하게 하기로!

자식들이 그렇지, 가면 그립고 미안하고.

오면 잘 한다 애써도 가고 나면 주지 못한 것들이 또 생각나고...

어제 갔는데 오늘 또 보고픈 우리 아이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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