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29.불날. 맑음

조회 수 341 추천 수 0 2021.07.26 23:35:06


 

오후 소나기 소식이 있었으나 그냥 지났네.

하루걸러 거두는 블루베리,

오늘은 반 바가지였다. 양이 주는 것 보니 끝물인 듯.

어제 거둔 마늘도 엮다.

열두 접 농기계집 서까래에 매달고,

자잘한 것들은 다시국물 만들 때 통째 넣으려 부엌 곳간으로.

가을 겨울 딱 우리 먹을 만치.

봄에는 사서 먹는.

 

시골에서 경계를 둔 이웃과 땅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은 흔하다.

어느 분이었더라, 객 하나 달골 와서 둘러보고 첫 마디가 그랬다.

사이가 안 좋나 보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웃의 철망 울타리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

달골 기숙사 앞으로 있는 땅은

안양에 사는 이가 별장 겸 농막 겸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오며가며 농사를 소일로 삼았는데,

서로 원활하지는 않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물꼬와 갈등하는 이가 있는데(마을의 적잖은 이들도 이이와 매한가지인),

그가 없다면 또 다른 이 하나쯤 그런 이가 있겠거니,

그래도 아는 적이 더 나으려니,

시골에서 날마다 얼굴 맞대고 살며 별 수 없어서도,

어느 날부터는 그러려니 하며 사는데...

달골의 이 이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무위당 선생이 동고동락(同苦同樂)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었다;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아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것이거늘

우리 공동체들이 동락만 추구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셨더라.

동고를 도려내고 고개 돌리고 버리고...

그렇게 한다고 동고가 사라지는 게 아닌데.

오락실 앞에 있던 두더쥐 대작전처럼

하나를 망치로 때리면 다른 하나가 튀어 오르는.

좋아하는 이만 이웃이 되면 얼마나 좋으랴만

우리 삶이 어디 그러한가.

동고라는 낱말에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담고 있을 것.

그가 사라지면 정말 동락만 남을까?

아니다. 또 다른 이가 생길 것이다.

심지어 앞에 있던 이는 미움의 대상 정도였는데

다음 사람은 증오의 대상으로까지 가는 이일지도 모를 일.

구관이 명관이다라거나, “쓰던 게 낫다라는 말처럼

그냥 (먼저)아는 이가 나을 수도.

건강한 공동체라면 고통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나누고 그것의 의미를 성찰하고 모두 함께 나아가는 곳일 것.

평화란 받아들여 함께함이라던가.

 

오늘 저녁 그 이웃과 결국 부딪혔다.

당신네 땅은 최대한 다 울타리를 쳐놓고 왜 우리 땅을 쓰느냐 뭐 그런.

결론은 없었다. 차이만 확인한.

가장 좋은 건 서로 반반 부담하여 경계측량을 하는 건데,

아쉬운 쪽에서 하라고 서로 밀고 있는 중.

평화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태도일지 결정할 수는 있을 것.

오랫동안 나는 욕먹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요새 삶의 태도를 좀 바꾸다.

그를 해치지 않은 바에야 욕 좀 먹어도 됨, 그런 식으로.

사이가 좋지 못할 수 있음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동고동락, 건강한 공동체까지는 못 가도

오늘은 섞여서 (그저) 살다정도로 소극적으로 규정함.

적어도 동락만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는 아니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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