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나무날. 맑음

조회 수 358 추천 수 0 2021.07.26 23:36:23


 

자정이 다 돼 문자가 들어왔다.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자주 찾아뵐게요~’

늦은 저녁 밥상을 물리고 떠난 희중샘의 문자였다.

진주샘이 연차를 써서 일손을 보태러 오는 걸음에

희중샘도 잠시 짬을 내겠다고 했더랬다.

3시 황간역에서 만난 두 샘이 먹을거리를 잔뜩 실어 들어왔다.

 

아침뜨락 달못 언덕과 메타세콰이어 사이, 내일 종일 심겠다던 잔디였다.

준한샘이 잔디 배달을 왔다.

짬도 좀 낼 수 있다며 땅을 같이 좀 쪼아주고 가기로 하셨다.

시작하려는데 들어온 샘들이라.

한숨 돌리고 오늘 해버리는 건 어때?

준한샘 있을 때 확 붙어서 끝내자!

준한샘이 우리 열 몫도 더하니까.”

일이 그리 되었다.

학교에 도착했다는 샘들한테 학교아저씨도 모시고 올라오라고 했다.

희중샘, “벌써 일 하나 하고 왔어요!”

학교의 여자 욕실 쪽 등이 오랫동안 켜지지 않았다.

옷 갈아입는 곳의 불로도 그리 불편치 않아

급하지 않으니 자꾸 밀리던 일이었다.

여러 사람이 등을 갈려고 등 자체를 돌려 빼려고 하였으나 꿈쩍 않아

아예 깨서 갈아야 하나 엿보며 시간만 흐르던 일,

희중샘이 일전에 다녀가며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등을 새로 사와 갈았다는 말이었다.

바깥샘이 그런 일을 챙겨 제가 사오고 갈아 끼우기까지 하는 일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밖에 있으나 정말 내부 식구인 그였던 거다.

 

다섯이 붙어 일을 나눠

잔디 올리고, 땅 파고 풀 뽑고 돌 고르고, 삼태기에 풀과 돌을 버리고.

갈쿠리로 전체 땅을 고른 뒤

잔디를 3등분으로 자르고 괭이로 줄을 파고 잔디 넣고 흙 덮고

뒤에 따라가며 밟고.

웬만큼 작업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은 저녁상을 차리러,

또 다른 이는 지느러미길의 메타세콰이어 사이 땅을 파러 이동.

메타 쪽은 자르지 않고 온 장으로 놓았다.

마지막으로 물을 듬뿍 주다.

호스가 끝까지 닿지는 않았다.

물조리개로 주는 일은 내일 해도 되지.

저녁 8시 모두 마을로 내려왔다.

당장 수정과와 식혜부터들 마셨네.

 

저희가 버섯전골 해드리려고 했는데...”

몇 가지 버섯에 청경채,

두부며 대파며 깐마늘이며 알배추며 풋고추며 단호박이며 멸치아몬드며

살뜰히도 봐서들 들여온 목록이었다.

언제부턴가 샘들이 들어오며 저들 먹을거리도 챙겨서 들어온다.

기특하고 고맙다.

뭘 먹일까 고민할 것도 없이 저들이 장을 봐서 들어온 것들로 밥상을 차리다.

국물을 진하게 우려내서 버섯전골에 당면사리를 넣고,

멸치아몬드도 볶고, 배추겉절이도 내놓고,

우리 밭에서 나온 오이를 무치고, 단호박을 쪄서 꿀을 얹어 후식으로 내놓고...

곡주도 같이 밥상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학교 뒤란에서 끝물에 점주샘이 따둔 앵두를 털어 먹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준한샘이 일어섰고,

설거지를 마친 희중샘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햇발동으로 들어온 진주샘은 녹초가 되었네.

내일 일 당겨 한 거니 낼은 늦도록 뒹굴라 하였다.

물꼬에 오면 그런 날도 있어야지!”

 

그런 생각을 자주한다.

어린 날부터 이적지 물꼬를 찾아 몸을 움직이고,

돈 벌어서 보태는 것도 모자라 손발 보태고,

무엇이 있어 저 사람들이 이리 마음과 몸을 쓰는가 하는.

그러면 절망도 없고 게으를 수도 없다.

저런 청년들 앞에서 어찌 힘을 내지 않겠는지.

나는 그저 풀매고 밥 하고 청소하고 고치면 될 일인 걸.

 

자정 넘어 아침뜨락에 들었다.

순전히 멧돼지와 고라니 때문이다.

야삼경에도 사람 소리 사람내 나면 그들 발길이 덜할까 하여.

점주샘이 지내던 지난 주 한 주는 날마다 그렇게 같이 올랐더랬다.

특히 여름밤이면 그런 줄 알지만, 쏟아지는 별에 묻힐 뻔 했다니까.

 

들어서는데 진주샘 쓰는 방에 불이 환하다. 인기척은 없다.

가만히 문을 여니 아주 쓰러진 진주샘.

쓰지 않은 근육을 한 번에 힘껏 썼으니...

혹 무서워서 켜둔 불이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불조차 끄지 못하고 누운 건지, 아침에 물어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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