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작된 장맛비, 아침에 그쳤더니 더는 뿌리지 않았다.

창고동 앞 하늘말나리가 진하게 꽃을 보였다.

하늘말나리는, 하늘 자가 들어간 것들은 하늘을 향해 곧다. 고고하다.

자존 (自尊;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높임)이라!

 

간밤에 비 온다고 야삼경 아침뜨락 걷기를 않았더니

그래서였나 멧돼지 새끼가 다녀갔다.

발자국 방향을 보니 들어오는 구멍을 알겠다.

북쪽 우거진 관목 사이 배수로를 타고 들어왔나 보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발자국은 오메가의 한쪽 동그라미인 민트 심은 쪽을 뒤집었다.

가장자리 상사화 뿌리를 두어 개 패놓았다.

바로 위 철쭉 군락지를 헤집어도 놓았다.

뽕나무 휘돌아가는 수로 위쪽 나리꽃도 죄 뭉개놓았다.

비 근 새벽녘에 다녀간 듯. 내 깊이 잠들어 있던 사이.

불침번을 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텐트를 치고 잘까도 생각 중.

 

학교에서는 모래사장 쪽 풀을 뽑고 있었고,

달골에서는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와 고추에 만든 약제를 좀 쳤다,

올해는 우리 과일을 좀 먹어보자 하고.

회양목과 주목에도 남은 약을 쳤다.

아침뜨락의 낮달맞이 꽃잎과 다래잎을 벌레들이 다 파먹고 있었다.

송충이도 아닌 것이 새까맣고 둥근 벌레들이었다.

그곳에도 역시.

기락샘과 제습이 가습이 마을 산책도 시키다.

가습이는 웃긴다. 저도 기락샘이랑 산책 끝낸 줄 다 아는데

이리 좀 와 보라고, 산책 안 했는 양 내게 짖어대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올라와서는

도라지밭 울타리 쪽의 철쭉들 너머의 풀을 낫으로 쳤다.

비 없는 틈에 바깥일을 잽싸게 하며 장마를 보낼 것이다.

 

혜지샘으로부터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연어의 날이 물꼬 첫 방문이었고,

사진을 오래 찍어왔던 그가 여기서도 그 역을 맡아주었다.

한 사람의 의지와 꾸준함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는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고,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님이 되고 벗이 되는

이 배움의 공동체를 일구어내신 선생님의 발자취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물꼬에 보내는 찬사였다.

그대 역시 바로 그 물꼬에 함께 계시었네.

애쓰셨고, 고마웠다.

활동사진보다 학교 정경을 찍은 사진이 더 많았다

다음 방문에서는 서로 함께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더 담고 싶노라 했다.

같이 그 풍경 속에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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