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11.해날. 구름

조회 수 312 추천 수 0 2021.08.07 10:10:39


 

저녁 8시께 천둥 번개만 요란했다, 비는 오지 않고.

종일 가라앉은 하늘이었다.

 

숨꼬방 뒤란의 나뭇가지들을 치고 있다.

남쪽과 동쪽 경사지.

여름에 지붕 위로 뒤덮어 좋기도 하나 그만큼 습이 많다.

저리 되면 건물도 치고 말지.

학교를 쓰고 있는 지난 25년 동안 시나브로 자란 나무들이다.

모르고 있다 어느 날 낯선 눈으로 보게 되는 날이 있다.

나뭇가지가 지붕에 아주 누웠더라.

 

멧골에서 손님을 맞고 보내는 일이 다다.

아니, 멧골의 삶을 살고 그 사이 사람들이 다녀간다, 라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공식적인 교육 일정 아니어도 사람이 적잖이 드나든다. 그저 밥만 먹으러도.

낼모레 여기서 작은 만남이 있다.

멀리 파주에서부터 오는 걸음도 있다.

비폭력 대화 훈련을 했던 이들이다.

창고동이야 이번에 쓸 일이 없겠다 하지만

이럴 때 바람도 들이고 하는 것.

문을 열어젖히고 쓸고 닦고.

햇발동은 좀 더 꼼꼼하게. 묵을 거니까.

욕실 창문틀이며 천장이며 바쁜 움직임엔 손이 잘 못갔던 곳들을

이럴 때 찬찬히 더듬기.

반바지에 속옷 같은 민소매만 입고도 땀이 줄줄 흘렀다.

씻고 나오니 세상이 달라졌다.

결국 늘 나 좋자고 하는 물꼬 일이다.

생이 다른 뭐가 그리 좋은 게 있다고!

그래서 또 더욱 기쁘게 하게 되는.

 

밤에도 아침뜨락을 든다.

수천 차례는 드나들었을 곳이라.

때로 무섭다. 어두우니까. 겁이 많은 사람이다.

가야할 까닭은 많다. 밤에 드는 짐승들 때문에도.

계속 지키고 섰을 수는 없어도 사람이 드나들면 낫지 않겠는가 하고.

(수행길이기도 하다. 딱히 무슨 일이 없어도 널을 뛰는 사람의 마음이라.)

숱한 걸음이 그곳을 알게했고,

그래서 (들어서는 게) 가능하다.

미지의 길이 두려운 거니까. 몰라서 더 겁나는 거니까.

그런데도 상상력은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어린 날 들었던 온갖 귀신과 도깨비들이 나오고...

달빛 별빛이라도 있는 날은 좀 덜한 걸,

사방 어디를 봐도 시커멓다.

그런데, 막상 가면 안전하다. 괜찮다.

그런 줄 아니 간다. 갈 수 있다.

다녀오면 좋다. 그래서 또 간다. 기운이 좋은 곳이니까.

아침저녁 드는 내 노동이 현장이니까.

사람같이 사는 삶의 밑절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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