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4.물날. 갬

조회 수 335 추천 수 0 2021.08.12 03:21:58


 

... 능소화가 피었다!

아침뜨락의 꽃그늘길에 올해 능소화를 몇 심었다.

뿌리도 심고, 꺾꽂이로도.

기둥을 타고 오른다 싶더니,

몽우리 맺힌다 싶더니,

정말 꽃이 될까 싶더니!

 

날이 쨍했다. 고마웠다.

덥겠지만 그게 행사를 준비하는 데는 그런 짱한 날이 더 도움이니까.

이른 아침부터 들일.

아침뜨락으로 향했는데, 역시나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물꼬에서는 가는 길이 멀다고 하지, 길목마다 일이니.

어제 들꽃 밭을 한 줄 맸다.

그 밭의 다른 쪽 키 큰 풀들이 또 발목을 잡지.

촉촉하게 젖어있는 땅 덕에 뿌리 깊은 것들을 퍽 수월하게 뽑았다.

때로 호미로 여러 차례 뿌리를 갈라가며 뽑기도 해야 했지만.

시계는 아침 10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시계가 없더라도 시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 시간쯤 일하면 한 발도 더 못 움직이겠다 싶어지니까.

이 맘 때는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하는 오전 들일인 걸,

오늘 좀 늦게 나갔다고는 하지만 10시면 볕에 가시가 많다.

모기 기피제를 뿌렸지만 벌레는 달겨들고

땀은 흘러 눈을 찌르고,

목에 건 수건을 풀고 모자 끈을 풀고 썬글라스를 벗고

그제야 땀을 닦기 몇 차례,

마지막에는 밭가로 나와 엉덩이에 붙인 풀의자를 편편한 바닥에 댄 채

철퍼덕 앉아 땀을 닦았다.

그때 낮게 헬리콥터 날았다.

산 사이에서 나타났을 때부터 멀리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따라가 구경을 하다 일어섰는데,

딱 눈에 걸려 도저히 안 뽑고는 아니 되겠는 키 큰 풀 하나,

어여 가 뽑는데, 쉬 뽑히지도 않고,

! 그런데 내가 썬글라스를 안 낀 걸 알았네.

마지막으로 풀을 뽑은 지점에 도로 가서 찾으니 없다! 둘러봐도 없다.

이제 의심한다, 자신을. 혹 그 전에 땀을 닦을 적 벗었던가...

심지어 아예 끼지 않고 집을 나왔나 싶기까지.

걸음이 닿았던 모든 곳을 훑는다. 없다.

나중에는 그런 상상이 다 드는 거라,

헬리콥터가 UFO였는지도 모른다는, 작은 쇠붙이들을 빨아 당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잃어버린 놈이 죄인이라.

포기한다. (오늘은!)

찾는 물건을 다른 사람이 찾아보거나 다른 시간대에 찾으면 눈에 보이기도.

이제 집안으로 들어갈 거니까 당장은 없어도 되겠고,

차에 앞전에 썼던 것이 아직 버려지지 않고 있으니 임시로 쓸 수도 있겠지.

안경을 꺼내 쓰고 마무리를 했다.

뽑아놓은 풀들을 걷어 언덕 아래 버리고,

사이집 앞 깎았던 잔디도 긁어서 버리고,

아침뜨락의 달못 가 뽑아두었던 풀도 버리고 돌아오다.

몹시 목이 말랐던 참에 까마중 까만 열매를 따서 먹으며 목을 축였다.

(저녁에 들어온 식구 하나한테 말했다. 썬글라스가 있을 데라고는 풀더미 밖에 없겠다고.

그가 언덕으로 내려가 차곡차곡 풀더미를 옮겼다. 그곳에서 나왔더라!)

 

먹구름 한 덩이 머리 위에 있었으나

그래서 빨래를 진즉에 걷었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저녁 들일은 아침뜨락을 걷는 길을 따라 훑어가기.

오늘로 계자 전의 아침뜨락 일은 끝내려하니까.

지느러미길에서는 강아지풀이며 방동서니며 바랭이며 씨앗들을 딴다,

그것들이 수천수백의 풀을 키우리라.

옴자 맥문동 사이 키 큰 풀들을 좀 뽑아내고,

달못 아래 쌓던 돌탑에 아직 얼마쯤 널려있던 돌들을 얹고,

아고라 잔디 위 한 부분만 풀을 뽑고,

아가미길 끝에 눈에 걸리는 풀들 뽑고,

돌의자 둘레는 깔끔하게 맸고

밥못 물이 원활하게 달못으로 잘 흘러가도록 거름망을 살펴주고.

, 미궁의 장승 하나가 넘어졌더라.

내일도 아침뜨락부터 들어와야겠네. 세워봐야겠다.

내려오며 꽃그늘길에서 기계가 닿지 못했던 부분을 뽑고,

능소화가 길을 잘 타고 오르도록 여러 곳을 끈으로 묶어주고서야

비로소 아침뜨락을 빠져나오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풀일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당장 일정 앞이라면 그 일정에 맞게 움직여야.

그때는 하고 싶은 일 따위에 시간을 쏟을 수 없다.

, 파바박, 빠른 속도로 움직여도 못 할 일들이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때라면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한다.

들일을 여유로이 잡고 나니

계자 준비에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국 계자 준비에는 그 심리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계자에도 도움.

오늘 그렇게 한 풀 일이었다.

 

하다샘이 밖에서 계자 일을 거들고 있다.

여행자보험을 챙기고 글집을 챙기고.

어른 열에 아이 열다섯, 스물다섯이 꾸릴 계자가 되겠다.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모이자는 제안들이 있었다.

그러자!

모두 음성판정을 받고 모인다면 마스크를 벗어도 되잖겠는가.

지내는 동안 우리는 대문을 굳게 잠글 테니까.

갑자기 큰 걱정을 던.

그러고도 우리에게 오는 코로나19라면 뭐 감수해야잖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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