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이 교문을 나섰다.

원 없이 놀았다!

우리 이런 시간이 그리웠다.

작년 1월 코로나19가 덮친 이후로 해가 가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대면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어른들은 그것을 확보할 책임과 의무가 있을지라.

 

해건지기 안 해요?”

며칠 했더니 애들이 찾는 아침수행이 되었네.

오늘은 셋째마당만 있는 해건지기.

이불을 이불방 한켠으로 정리, 빨 것과 새 이불을 구분 짓느라.

베갯잇도 벗겼다.

그리고 마당을 걸었다지.

흔히 소리에 많이 노출되어 목소리에 바로 반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형원이가 한 번에 대답을 하는 일이 드물더니

이 아침 이제 바로 돌아보는 그였네.

우리는 그렇게 한 발씩 서로에게 더 귀를 기울였더라.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이번 계자는 근영샘이 대표로 밥상머리무대에 선 셈이었네.

저 안 할래요.”

지율이가 며칠 동안 밥상머리공연을 엿보았지만 접고 말았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제 배움이 있을 게다.

 

짐을 쌌다. 엊저녁부터 싸던 짐이다.

산을 내려오면 더는 빨래바구니에 빨랫감을 내놓지 않고 제 가방에 싸니.

제일 어린 여덟 살 세미가 가장 야물다.

빨래는 가져온 비닐봉투에, 수건은 항상 잘 개서, 그런 다음 여행가방을 다시 잘 닫아둔다.

어린 세미가 아니여. 한 집안의 장녀여!”

그렇게 외쳐줄 만큼 단단한 그였더라.

 

가기 전까지 반짝한데모임을 해야 할 아이들의 상황은 생긴다.

다른 친구의 글집에 바보라고 누가 쓴 모양이다.

그렇게라도 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

물었지만 쓴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있을 때 대답이 곤란할 수 있으니 제가 따로 물어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누구냐 물어보지 않았다.

자신은 아니까.

무엇보다 당장 누군가 다치고 피 흘리는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물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었으리라 생각하고 묻고 이해하려 한다.

한데모임에서 계속 살피는 한 부분이기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해 서사를 부여하겠다는 게 아니라(또한 아이가 무슨 그럴 일까지 있겠는가)

그렇게 한 그 마음을 헤아려보자는 노력.

그러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게 없었던.

평화는 결국 받아들임이니까.

 

먼지풀풀을 위한 한데모임.

일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할까를 의논하는 자리.

그저 우리가 잘 지냈으니 끝까지 잘 치우자,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누군가 준비해준 것처럼

우리도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마음을 내고 치우기.

또한 물꼬를 나갈 때의 흐름을(코로나 시국이 시국이니) 두어 차례 아이들과 확인하다.

부모님들은 대문을 들어서서 천막 아래로 가 반찬통을 찾아가고,

우리는 우천 매트를 따라 대문까지 가서 늘어선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부모님과 만나 교문을 나간다, .

 

11시 아이들이 모둠방으로 모였다.

같이 지낸 엿새를 돌아보며 갈무리글 쓰기.

다음은 책방 앞 복도 신발장 곁에서 마친 보람’.

서로 애쓴 모두를 위한 격려.

마지막으로 글집에 도장을 받고

가마솥방으로 가 낮밥을 먹다.

1310분 전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부모님께 먼저 달려가지 않고,

오히려 들어온 부모님께 아직 들어오면 안 된다고 대문에서 기다리라고 선을 그어주기도.

아이들과 자유학교 노래를 끝으로 헤어지다.

 

샘들 갈무리모임’, 아이들이 쓴 갈무리 글을 먼저 돌려 읽은 뒤.

정환샘,

갈무리글에 여기에 와서 친구들과 놀아서 좋다는 말이 있었는데,

코로나 시국에 요즘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물꼬가 큰일 했구나, 내가 거기 기여했구나...”

그래서 했다. 삶은 계속 되니까. 아이들은 자라니까. 아이들에게 놀 장을 주고 싶었던.

지난여름 계자 직전에 물꼬 누리집에 올린 글 일부는 이랬다.

초등 여름 계자는 2021117일부터 22일까지 예정하고 있습니다.

물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해서가 아닙니다.

강행한다기보다 당면한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삶은 계속되지요.

우리는 여전히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학교 등교가 멈추어도 긴급돌봄이 돌아가듯

물꼬는 물꼬의 일을 해나가고 있는 거지요.

아이들에게야말로 절실하게 대면수업이 필요합니다!

그간의 피로감을 피해, 이곳에서의 시간이 더욱 필요하지 않나도 싶습니다.

이곳에 모이기 위해서도 각자 최대한 조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사람 흐름이 거의 없으니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특히 계자 동안은 철저하게 교문을 닫아걸 거다,

이런 생각들이 밑절미에 있답니다.’

 

태희샘은 수범이며 채성이며 아이들의 성장을 보았노라,

그리고 산오름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던 감동에 대해 말했다.

휘렴샘 역시 물꼬 7년을 함께한 채성이 남긴 여운을 더했다.

채성이가 이제 (몸이) 정돈된 상태로 내려오더라구요.

7년 세월이 아깝지 않고 흐뭇했어요. 성장은 아이가 하고 감동은 제가 받네요.’

갈무리글을 읽는데 아이들이 생생하게 (우리들의 시간을) 기억하는구나 싶더란다.

교사로서 처음 움직인 사범대생 제욱샘은

애들이 언제 어디서 뭐 했나 잘들 기억해서 자신이 실수 하진 않았나 뜨끔했더라지.

짧은 시간인데도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게 신기하더라고,

예컨대 한데모임에서 나온 걸 듣고 기억하고 고쳐나가는 모습.

애들보다 제가 더 감동이었고 배움이었습니다.”

 

샘들은 첫 만남에 서로 왜 물꼬를 왔는지 묻는다고들 한다.

근영샘은 그 대답으로 갈무리를 했다.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단다, 이걸 업으로 삼아야 되나.

그 시점에서 와서 자신에게 도움이 크게 된 시간이었다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 애들하고 가치 있는 시간을 같이 하는 게 소중해서...

선생님들이 칭찬해주고 챙겨주고 하는 속에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이전 계자에서 같은 학교 사범대 샘들과 같이 우르르 왔을 땐 잘 못느꼈던 것들을

소규모라서 더 많이 느끼고 얻을 수 있었단다.

애들한테도 이 시간 참 소중했을 거 같애요. 아무 생각 없이 조건 없이 놀고...”

 

첫걸음한, 이선정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러고 보니 이번 계자는 전직 간호사(이선정샘)에 예비 간호사(태희샘)까지 있었네.

샘들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모두(애도 어른도) 똘똘 뭉쳐서 놀고 끈끈하고, 어제 봤던 것처럼 잘 놀고...”

이런 공간이 어떻게 굴러가지 궁금해지더란다.

애들이 별 생각 없다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생각이 많구나 싶기도 했다고.

이렇게 전자기기 없이도 재밌게 놀 수 있구나, 나만 해도 하루 종일 폰 만지고 사는데,

여기에선 확인도 안 하고 전화 덮고그래도 잘 살 수 있고 살 살고 있는...

애들이 자기가 만든 물건으로 놀고, 참 의미 있을 것 같애요.

요새 그렇잖아요, 부모가 돈 주고 사 주고 좀 갖고 놀다 버리고...

여기서는 아이들이 바느질 하고 그림그리고 만들고 해서 놀고...”

처음 여기 가보자는 동료 교사 정환샘의 제안을 받고는

어디 이상한 곳에 팔려가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고,

혹시 이상한 종교는 아닌가 하고.

그렇지 않고서야 전화도 안 되고 하는 곳에 일주일씩 들어간다는 게...

그래서 어머니께 여기 번호까지 잘 일러주고 왔다지.

어떻게 이 자본의 시대에 교장샘을 비롯 모든 어른들이 자원봉사로 학교를 꾸리고

그 학교가 무려 30년이 흘러 지금도 이어지다니!

이 모든 말을 바로 10년 전 정환샘이 처음 물꼬를 와서 그대로 했다.

그가 물꼬행 10년을 보낸 뒤 벗을 데리고 온.

찡했다.

같은 걸 본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닌 사람이라.

어떤 이는 긍정을 보지만 또한 동시에 부정을 보는 이도 있다.

물꼬의 선한 뜻과 결을 봐줘서 고마웠다.

 

버스 시간이 오기 전 샘들이 마저 계자 뒷정리을 했다.

밖으로 나갔던 큰 물건들이 모둠방으로 들어오고, 아이들과 미처 청소하지 못했던 공간들을 치우고.

부엌만 해도 나왔던 모든 것을 어찌나 싹싹 닦아 놨는지 들여놓기만 하면 될.

남게 될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물꼬의 교사들이 이렇다!

샘들을 헐목(물한리에서 나오는 버스를 타는)에 실어 나르고,

정환샘 이선정샘과 차를 한 잔 더 마셨다.

남도 저 끝에 있는 섬에서 같은 중학교의 학급 담임 부담임으로 일하고 있는 그들이다.

좋은 품성의 교사는 이미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이라.

밖에는 기락샘이 들어와 제습이 가습이 산책을 시켜주고 있었다.

내내 묶여있던 녀석들이 좋았겠지!

 

모두 떠나고 비로소 배식대 위 엎어놓은 그릇들을 닦고

양념통이며 다시 배치하고

계자 부엌에서 다시 일상의 부엌으로 질서를 다시 만들고 있을 적

소나기 쏟아졌다. 아이들이 갔단 말이지, 계자가 끝났단 말이지.

빗소리가 채운 부엌에서 조금 늦은 저녁밥상을 차렸네.

 

모든 계자가 그랬겠지만 또 특별한 168계자였나니.

안정감이 있더라.

지난겨울부터 수세식 변기를 둘 들여놓은 덕도 있고,

밥바라지들이 주는 든든함과 물꼬에서 오래 훈련해온 샘들이 딱 포진하고 있어서도.

계자의 아이가 자라 새끼일꾼을 하고 품앗이샘이 되고 논두렁(후원자)이 되는.

계자 하는 가운데 한 번쯤은 졸음에 겹고 힘이 들어서

내가 이걸 왜 또 한다 그랬나 탄식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더라지, 하하.

미리부터 손에 걸릴 일을 더 많이 해두어서도 이 멧골 일상을 밀고 계자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밥바라지로서도(나중엔 2혹기 3호기가 들어와 부엌에서 날 빼주기도) 수월했다.

부모님들이 반찬을 큰 덩어리로 보내주시면서 찬 한 가지 덜 해도 되는, 손을 딱 덜어주셨던.

밤새 어떻게든 우리들의 순간을 많이 기록해두려던,

그래서 졸면서 컴퓨터의 같은 자판을 내내 누르다 화들짝 잠을 깨기도 했던,

그 욕심을 두어 날은 내려두고 잠을 조금 더 잔 것도 도움이 컸다.

사람이 잠을 자야지!

계자를 할라치면 농사꾼이 막걸리로 힘내며 일을 하듯 밤마다 곡주 마셔가며 힘을 내기도 하는데,

이번엔 샘들이 적어 더 긴장한다고 거의 그런 날이 없기도 했네.

그게 악순환이거든. 힘드니 마시고 마셔서 힘들고 그런

말하니 무슨 술꾼 같은. 계자 때만 그렇다는 거다, 계자 때만.

"물꼬가 강도가 좀 세죠. 많이 세죠."

이선정샘이 그랬더라니까.

!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내 평안의 가장 큰 까닭은 내 힘듦을 나눠준 샘들었다.

휘령샘, 정환샘, 태희샘, 윤지샘, 근영샘, 제욱샘, 윤호샘, 이선정샘, 그리고 삼촌(젊은 할아버지; 학교아저씨),

내 평안의 다른 한 까닭은

말을 잘 알아듣고 움직일 줄 아는, 이곳에서 누릴 줄 아는 아이들이 있어서도 그러했다.

아이들을 더 많이 기댔더니 아이들이 자율의 힘을 더 많이 발휘한. 아이들이 그런 존재들이다!

세미 수범 윤수 동우 서윤 세준 정인 지율 현준 태양 도윤 형원 세영 태양 채성,

고맙다, 나의 동료이자 동지여 도반이여 벗들이여,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부디 강건하기로, 그래서 또 만나기로.

물꼬는 내일도 모레도 여기 있겠다!



관리자

2021.08.18 21: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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