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이다. 장맛비처럼 비 내린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졸음에 겨웠다. 계자 뒤끝이다.
드문드문 168계자를 기록하다.
제습이 가습이 산책을 시켰다.
어제 기락샘이 들어와 습이들을 데려나갔으나
계자 동안 매여 있기만 하느라 좀이 꽤 쑤셨겠지.
아직 어린 녀석들이라 뛰어노는 아이들 보며 시샘도 했을 게다.
마을을 휘휘 돌아다녔네.
아침뜨락은 그 사이에도 풀을 또 얼마나 키웠는지.
그 틈에서도 꽃그늘길에는 능소화 몇 송이 피고지고,
꽃범의 꼬리(피소스테기아: physostegia)가 한창.
부용화도 아직 피어있고,
생각난 듯 풀더미에서도 키 낮은 장미가 한두 송이 피고.
산딸나무 열매가 붉어간다.
작년에 옮겨 심었던 몇 그루의 측백이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열매를 엄청 달았더랬다.
그것도 무거울까 지나다니며 더러 열매를 따기도 했더랬다.
푸름이 바래 걱정스레 바라보는데,다행히 죽지는 않으리란 전문가의 진단이 있었음.
사람이 찾아들 일 잘 없는 달골.
우리 마당을 지나야 밭으로 갈 수 있는 댁에서
농사지은 아로니아와 복숭아를 건넸다.
애써 지은 걸 이리 쉬 얻어서야 되겠냐고 다음부터는 나누지 마시라 했다.
마침 우리에겐 어제 들어온 포도가 있어
그것 두어 송이 답례로 바구니에 넣어 보냈다.
다음 주말과 그 다음 주말은 ‘멧골책방’ 일정.
21일에는 작은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어르신 넷이 들어온다 했는데,
앗, 저녁에 전화가 들어왔다. 책을 내시는 어른이 갑자기 집안일이 생긴.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다.
물꼬 청년 셋은 그대로 그 일정에 잔류하네.
독일에서 들어와 있던, 곧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세인샘이 들어오는 걸음에
희중샘과 하다샘도 들어오기로.
소식 뜸했던 물꼬 바깥식구들이 연락들을 했네.
계자가 있을 무렵이면 이곳을 더러 생각들을 한다는.
계자 아이였고 새끼일꾼을 거쳐 이제는 품앗이가 된 한 친구는 글월을 보내오기도.
‘고등학생 때 새끼일꾼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내가 스트레스가 없고,
내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 (...) 스트레스 많이 받은 상태에서 새끼일꾼을 했을 때 몸과 따로 노는 입,
그리고 행동에 대해 후회한 것이 많았거든요.’
요즘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다.
‘평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잘 공감해서 들어주는 편이고,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냥 이야기만 들어서는 공감이 별로 되지도 않고, '너는 너고 나는 나지' 이런 류의 생각이 많이 들면서
왜 이렇게 변했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단단한 나(?)를 만드는? 휘둘리지 않고 힘든 일이 있어도 털어내고
다시 일어나는 것에 있어서는 많이 발전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어른이 되긴 힘드네요ㅎㅎ’
모두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살아가고 있었다.
“옥샘은 계자 때 아니면 뭐 하세요?”
계자를 들어온 아이들이 더러 묻는다.
이번엔 5학년 세영이가 물었던가.
“계자는 물꼬의 삶 가운데 10분의 1도 안 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