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말갰다. 아침 해도 볼 수 있겠다.

06시 젊은 친구들을 깨웠다. 젊은이들이 일어나기 쉬운 시간은 아니다.

이 하늘이 사라지면 어쩌나, 혼자 애가 좀 달았다.

눈을 비비며 천천히 걸어들 나왔다. 아쿠, 하늘은 다시 흐릿해져버렸네.

 

아침뜨락에 들었다.

물꼬의 짧은 일정에서는 밤이 늦어지고 그만큼 아침이 더딜 때가 흔했다.

올 학년도에는 흐름을 좀 바꿔보았다, 겨울은 몰라도 여름만큼은.

멧골 동트는 빛을 나누기로.

아고라에 앉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산빛 하늘빛을 담았다.

아침뜨락 달못 가의 배롱나무는 올해 꽃을 피우지 못할 모양이다 싶더니

이제라도 꽃을 달았더라. 고마웠다.

아가미길의 돌의자에서 아침을 여는 마을도 내려다보고

자작나무 몇 그루 사이를 지났다.

이런! 한 그루가 잎을 다 떨구었네. 다행히 싹이 난다.

나무는 물이 없어도 걱정이지만 또한 많아도 탈이라.

미궁에 들어 대나무기도처에서 한 사람씩 하늘도 만나고,

미궁길을 걸으면서는 옴을 읊는 구음 대신 아고라에 틀어놓은 음악에 몸을 실었다.

흐린 하늘을 이고 밥못에들 둘러앉았다.

뒤를 한 번 보셔요!”

...”

동쪽에서 준비된 무대를 열 듯 딱 그때 해가 떠오르고 있었으니.

아침뜨락의 신비는 그렇게 만들어졌더라.

 

이번 주와 다음 주는 멧골책방이 있는 주말이지만

이번 주 우리는 아침뜨락 일부에 잔디를 심기로 했다.

정작 책 읽으러 오기로 했던 이들이 다음을 기약하게 되면서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준.

그에 맞춤하게 어제 비 내리고 내일 또 내린다는 데 오늘은 맑음.

아침뜨락 들머리에 걸쳐놓은 룽따 아래 놓인 잔디부터 한 꾸러미씩 끌어올리고 있을 때

학교아저씨도 손수레를 끌고 왔다.

미궁에 이르는 경사로와 미궁에서 잔디가 심겨지지 않은 부분이 오늘의 현장.

다른 때 하던, 줄을 길게 지어 심기가 아닌

오늘은 감자라도 심는 양 각자 호미로 파고 하나 심고 또 파고 심는 방식.

학교아저씨가 잔디 한 장을 3등분으로 자르고 희중샘 세인샘 세빈샘 하다샘 기락샘이 심고 있을 적

아침을 챙기러 가마솥방에 다녀왔다.

10시께 참을 낼 적 준한샘도 합류했다.

이런! 오신 걸음에 잔디를 또 달고 왔네.

일은 더 커져 아가미길의 돌의자 둘레,

그리고 달못과 아고라 사이, 그러니까 아가미길로 오르는 쪽도 심기로.

역시 해본 이가 낫다.

희중샘은 지난 번 달못에 진주샘과 함께 잔디를 심어보았기

앞서 땅을 골라 나가는 준한샘 속도에 맞춰 달리고 있었더라.

 

꼬박 네 시간을 엎드려 심고 잔디를 털었다. 잔디 20700, 5장씩 140묶음!

여럿과 아침뜨락 여러 부분의 잔디를 심었는데,

가장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일했던 구성원들이지 않았나 싶다.

씻고들 내려와 낮밥을 먹고 비로소 책방에들 들어가 쉬다. 아마도 책은 빼고.

설거지 하러 온다는 걸 쓰러졌겠거니 하며 부를 것 없이

깰까 조용조용 느릿느릿 설거지를 하다.

덕분에 40여 분은 눈들을 붙였다고,

운전해서 돌아가는 길이 늘 길었던 희중샘,

오늘은 휴게소에서 커피만 한 잔 사고 내리 갔더라는.

오른 손등의 결절종, 왼손의 손목터널증후군, 코로나 백신 접종 후유증,

발가락의 지간신경종(이게 뾰족 구두 안 신어도 생긴다. 예컨대 볼 좁은 장화를 달고 신어도),

갖은 것들로 노인네랍시고 여느 때와 달리 풀 좀 뽑고 밥과 참만 준비하였던 바

내게 퍽 수월한 일정이었다. 고생한 샘들 앞에 말하기 멋쩍지만.

세인샘이 독일에서 학기를 시작하기 전 이리 얼굴 보고 가서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그 얼굴 보는 일이 이리 고된...

미안하고 고맙다.

하다샘, 대배가 더 낫겠다던가.

움직이지 않던 근육, 요새 하지 않던 일이어 더할.

정신없을 의대 5학년 실습의 해에 고단을 곱하게 되었을세.

어렵게 과외를 밀고 부랴부랴 합류했던 세빈샘,

못 오게 되었던 일정을 다시 오도록 만들어 달려온 희중샘,

모두 모두 잘 풀고 또 일상으로 무사히 가시라.

악기들을 다루는 세빈샘과 세인샘, 손이 괜찮으려나...

 

2시 모두들 나가고,

아침뜨락에 올라 잔디를 둘러보았다.

제법 너른 아침뜨락이어 오늘 심은 곳이 그리 넓어 뵈진 않아도

그곳만 보면 아주 널따란 곳이라.

욕들 보셨다! 아침뜨락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이번 주 멧골책방은 책 대신 아침뜨락에서 호미로 흙을 읽고 잔디를 읽었네.

다음 주 멧골책방은 책을 펼 수 있을지.


명상 관련 책 하나의 영문 원고가 와 있다.

한 출판사에서 번역을 가늠해보고 있다며 살펴봐 달라 의뢰한 일이다.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명상 책이라는 까닭일 것이다.

물꼬에 명상 책을 내보자 제안도 하고 있는 출판사.

한 사나흘을 꼬박 잡아야 앞뒤는 좀 살펴볼 수 있을.

한 주 내내 비가 많다 하니 마침 시간도 좋겠다.

영혼을 성장시키는 책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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