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7.불날. 비 오다가다

조회 수 320 추천 수 0 2021.10.28 15:04:46


 

살짝 해가 나올 듯하던 순간이 없지 않았지만

비가 오다가다 했다.

 

공사를 곧 할 곳의 잔디를 떼어냈다.

스윽 떼어내 스윽 붙일 줄 알았다.

파는 잔디를 떠올렸다. 가로 세로 15cm 규격이다.

떼다 보니 그게 적정규격이었음을 알게 된다.

삽을 세워 자르고, 그 아래로 괭이를 기울여 쳐서 두어 차례 만에 뿌리를 끊어내기.

전체 여덟 평 정도 되는 잔디를 다 패내야 한다. 포기하거나.

돈으로 따지면 그게 얼마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꼬의 일이란 늘 그런 범주를 넘는다.

낡은 바구니 하나가 값이 얼마나 하겠는가.

하지만 그걸 두어 시간 꿰매고 앉았는 삶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만큼의 플라스틱을 버리게 되는 거니까.

애써 키운 잔디를 힘들다고 버리겠는가.

다시 삽을 잡는다.

삽질 괭이질은 시작만 가볍다.

두어 줄 팼더니 벌써 힘이 부쳤다.

그럼 또 내일 하지.

8월에 책(<다시 학교를 읽다>)이 나오고 바로 계자며 여름 일정이 이어져

이제야 편집자와 통화를 하다.

제가 흥행력이 좀 떨어지지요...”

책이란 다른 매체처럼 금방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다음 책을 계속 쓰는 걸로 그걸 높이자,

그가 한 위로이고 격려였다.

 

말의 온도, 말의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내 말은 안개였다.

말은 명징해야 한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고개가 꺾였고

온기라는 이름으로 강도가 엷어졌으며

정치적 중립이라는 비겁함으로 뭉뚱거렸고

때로 어떤 사안에 대해 잘 몰라서도 애매했다.

어떨 땐 간단한 문장 하나가 상황을 잘 정리해준다.

용기를 수반해야 할 경우가 많겠지만.

무엇보다 따뜻해야 할 테지.

-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 잘 모르겠습니다.

- 아직 못했습니다.

- 못하겠습니다.

결국 거절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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