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달골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트럭이 드나드느라 풀어서 한쪽으로 몰아둔 다루촉을 다시 걸었다.

순간 따끔!

보이지 않았지만 벌이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쏘였을 테고.

어두우면 그럴 일 없겠다 싶었다.

꿀벌은 날개 쪽 근육이 따뜻해야 움직인다 했으니까.

밤에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건 잘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했다.

그런데 일부 밤에 활동하는 벌이 있다.

어리호박벌은 칠흑 은 밤에도 먹이를 구한다고 했다.

밤에 활동하는 벌들은 주로 열대나 아열대 혹은 사막지대에서 살아간다는데,

그런 기후에선 밤에만 꽃을 피우는 식물이 많으니.

아열대로 간다는 한국의 기후가 벌도 밤에 더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인지.

벌을 비롯 벌레한테 쏘이고 자주 퉁퉁 붓는다.

혹 침이 있을까 카드로 긁고, 얼른 얼음팩을 댔다.

오늘은 약도 챙겨먹기로 한다.

공사 중이라 움직임이 원활해야 한다 싶어서도,

낼모레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는 상황에서 이게 변수라도 될까 하여.

학교로 내려가 약을 챙겼다.

아침바람이 멀리 태풍이라도 오는가 하는 바람.

해도 살짝 누그러져서 나왔다.

길이 예상되지 않는 태풍 하나가 온다는 날 역시 가늠할 수 없이

변죽을 울리고 있다, 라고 쓰는데,

, 변죽이란 말이 무슨 북인가 생각해왔던 듯.

바로 집어 말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할 때

변죽을 친다거나 변죽을 울린다고 흔히 쓰니.

그릇이나 세간 따위의 가장자리를 말했다.

여하간 태풍이 다녀갈 모양이다.

지금은 공사 중. 잘 피해 지나가면 좋으련.

 

아침뜨락을 걷고 손에 걸리는 풀 몇 개만 뽑은 채

오늘은 달골 건물 창 바깥을 좀 닦다.

한해 두어 차례 겨우 하는 일이지 싶다.

오늘은 마침 공사 때문에 나와있는 사다리들이 있어.

문을 다 닫아두고 바깥에서 물을 뿌리고,

세제로 닦고 다시 물걸레로.

 

집 덧붙이 공사 나흘째, 치목 이틀째.

낮밥을 먹다가 창을 내다보는데,

볕이 나와 있다.

어제 볕이 다르고 오늘 볕이 다른.

기울었다. 가을볕이다.

그래도 가을을 장마로 시작하던 날들 끝에

볕이 좋아서인가 보다, 아직 크는 호박이 있다.

풋호박을 따왔다.

저녁밥상에 좋은 찬거리였다.

밤에는 식혜를 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다.

 

학교아저씨는 운동장 가장자리 소도의 풀을 뽑고,

준한샘은 학교와 달골에 각각 휘발유를 들여 주고 갔다.

엔진톱에서부터 예취기며 기계들이 한참 돌아가는 요즘이라.

저녁밥상을 차리기 전 습이들 산책을 시켰다.

보는 시간이 많지 않을 땐 주인이 보이기만 해도 이리로 좀 와보라 애타게 부르는데

요새는 편안해들 한다.

산책을 할 때도 성마르게 마구 달리지 않고 총총총 걷는 제습이와 가습이.

 

오늘은 차를 냈다.

같이 모여서 일만 해서야...

일에 대한 이야기도 밀고 지금 하는 생각들을 나누다.

민수샘이야 해마다 두어 차례 물꼬에 여러 날을 머무른 경험이 있지만

호수샘은 첫걸음.

물꼬에서 하는 활동들, 생각들이 창조적이고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드신다고.

물꼬는 그것에 대해 자생적이란 표현을 쓴다.

우리 삶이란 게 앞선 세대로부터 또 동시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야 없지만

대체로 물꼬의 삶은 물꼬의 필요와 조건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활동들.

세상과 혹은 도시와 적절한 물리적인 거리(그게 결국 환경의 조건이기도 하겠지만)도 한몫하니

일종의 독자적인 문화가 만들어진 거랄까.

종국에는 삶에 대한 방향성, 그리고 가치관이 만든 것일.

대단히 견고하거나 단단한 철학적 바탕이 있다거나 그런 것까지는 아닌.

좀은 헐렁하고, 다만 애써보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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