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에 없던 비였다.

몸이 늦게 깨어나는가 했더니 아침 7시가 지나며 비가 보슬거렸다.

오늘은 사이집 덧붙이 공사 현장을 끼고 들일을 하자 하는데,

가랑비는 계속되었다.

그래도 목수샘들은 햇발동에서 현관 데크를 걷어내기 시작하다.

실어내리기 좋게 앞쪽으로 나온 나무를 쌓고.

그 아래서 나온, 현장에서 흔히 콘크리트똥이라 부르는 얼마쯤의 콘크리트 덩어리도 걷다.

현관 쪽을 다시 데크를 까는 대신 현재의 콘크리트 상황도 나쁘지 않으니

더 깔끔하게 시멘트를 바르는 쪽으로 하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 늘 드나드는 곳인데, 자꾸 눈에 걸리지 않겠는지.

연장 든 김에 하는 게 좋을. 깝시다!”

이번 일정에 정히 손이 안 된다면,

각관만 잘라 용접을 해주면 천천히 내가 해나갈 수도.

 

낮밥상을 물릴 쯤 걷히는가 싶던 비더니

보슬비가 날리듯 내렸다.

작업 현장도 오후에는 멈춘.

학교도 느긋한 흐름이었다.

목수샘들과 학교아저씨가 주워온 알밤을 깠다. 밥에 넣으려.

가지도 넉넉하게 따왔다. 가지구이도 좋지.

물꼬에서 드물게 보는 고기이지만 공사라도 있을 땐 하루 한 끼는 고기를 얹는다.

비가 부슬거리는 이런 날은 얼큰한 국물요리가 좋을 테다.

부침개도 하고, 닭계장을 준비한다. 간단하게. 다만 시간이 걸리는.

닭을 압력솥에 양파 대파 마늘 무 월계수잎, 그리고 된장 아주 쬐끔 넣고 15분 끓이고,

20분 뜸들이고 10분 식혀 닭고기 찢고 양념 버무려 밸 때 기다렸다 다시 10분 끓이면 끝.

고사리 숙주 버섯 대파 데쳐 양념에 무치고.

토란대며 다른 야채도 있다면 같이 넣어도 좋을.

양념? 고춧가루 진간장 마늘 맛술, 그게 다이다.

비 오는 날 얼큰하라고 오늘은 고추장 한 숟가락도 투척.

그런데 나는 맛을 모르는. 고기를 먹지 않는 관계로다가.

물꼬에서 밥 먹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호수샘이었네. 민수샘도 그런 걸로, 하하.

 

낮밥에는 잼과 요걸트를, 저녁에는 주로 과일을 후식으로 내는데,

오늘은 아로니아를 꿀과 갈아서 내다.

달골에 아로니아를 키우는 이웃이 있고,

우리 마당을 지나야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한 그네가

여름 끝에 인사로 건네준 아로니아.

그나저나 언제까지 그렇게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 텐데.

그네도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을 테지.

귀농인들이 땅을 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게 거기 이르는 길이 있느냐는 것.

길 없으면 맹지지.

저네만 하더라도 사서 들어온 땅이면 사지 않았을 테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도시에서 퇴임을 앞두고 노년을 준비하며 짓기 시작한 농사.

구순에 가까운 노모가 이 마을에 살고 있으니.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짓는 농사 어림도 없을.

어떻게 남의 집 마당을 밟고 농사를 짓겠다 하겠으며,

또 길을 내주고 있는 주인으로서도 어떻게 남이 내 마당을 밟게 하겠는지.

햇발동 거실 앞을 지나고, 아침뜨락 지느러미길을 걸어서 지나다니는데,

사람이 지나는 거야 괜찮지만 사륜차가 지나는 건 지나친 일 않겠는지.

몇 해 전엔 양해도 구하지 않고 굴착기가 우리 마당을 지나 그네 밭에서 작업을 한 적 있었다.

대문이 달린 뒤로는 사륜오토바이만 지나다니는 게 가능해진.

후 내년이면 마을로 아주 들어온다는데,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야겠다.

시골에서 외지인도 아닌 외지것이 살아내기에 쉽잖은. 우리 말이다.

정작 나는 여기 사는데,

여기 살지도 않는 이곳이 고향인 이가 여기 사는 이보다 세다.

20년을 넘게 살아도, 마을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도,

이권이 개입되는 순간 외지것과 마을사람은 구분이 돼버린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756 2021. 9.29.물날. 흐리다 비 / 덧붙이 공사 보름째 옥영경 2021-11-24 346
5755 2021. 9.27~28.달날~불날. 맑았고, 이튿날 흐리다 밤 비 옥영경 2021-11-24 488
5754 2021. 9.26.해날. 갬 옥영경 2021-11-24 351
» 2021. 9.25.흙날. 예보 없던 가랑비 옥영경 2021-11-24 322
5752 2021. 9.24.쇠날. 맑음 옥영경 2021-11-24 314
5751 2021. 9.23.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1-11-21 325
5750 2021. 9.22.물날. 비 내리는 오전 옥영경 2021-11-18 333
5749 2021. 9.21.불날. 비 내리다 오후 갬 / 한가위 보름달 옥영경 2021-11-18 572
5748 2021. 9.19~20.해~달날. 맑음 옥영경 2021-11-18 326
5747 2021. 9.18.흙날. 맑음 / 공사 여드레째 옥영경 2021-11-14 358
5746 2021. 9.17.쇠날. 비 조금 옥영경 2021-11-14 329
5745 2021. 9.16.나무날. 흐리다 밤 비 옥영경 2021-11-14 371
5744 2021. 9.15.물날. 맑음 옥영경 2021-11-14 322
5743 2021. 9.14.불날. 구름 좀 /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간다? 옥영경 2021-11-14 324
5742 2021. 9.13.달날. 가끔 구름 / 밤에 만난 벌, 그리고 물꼬의 자생성에 대한 몇 자 옥영경 2021-10-28 469
5741 2021. 9.12.해날. 맑음 / 치목 첫날 옥영경 2021-10-28 366
5740 2021. 9.11.흙날. 맑음 / 봉창 옥영경 2021-10-28 451
5739 2021. 9.10.쇠날. 흐림 / 사이집 덧붙이 공사 시작 옥영경 2021-10-28 399
5738 2021. 9. 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1-10-28 337
5737 2021. 9. 8.물날. 갬 옥영경 2021-10-28 29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