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으로 아침을 열었다.
아침 8시 해가 떴다.
새벽 5시 일흔 두 남자가 대청봉을 향해 나서고,
대청봉에서 한계령을 다녀온 부부가 부산으로 떠나고,
우리는 오늘도 남았다.
여기는 대청봉 아래. 설악 나흘째.
“더 누워있을라 했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주인장이 나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단다.
윗집과 이 집 사이에 난 골목에 작은 세수대야만 한 고양이 밥그릇을 한가운데 넣고
사료를 잔뜩 부어주었다.
그런데 마을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큰대문집 개란다. 어제 보았다. ‘봄이’였다.
이 시간만 되면 온단다.
고양이 밥을 홀라당 먹고는 한다고.
그를 쫓고 있는데, 멀리서 주인이 개를 불렀다.
그래서였나 내게 경계를 푼 고양이들이 내가 아주 가까운 것도 아랑곳 않고
먹이를 먹으러 몰려들었다.
아홉 되는 고양이들이 머리를 박고 있었다.
“아홉 마리던데요.”
“새끼들도 있어. 다 숨어있어.”
이곳에서는 이곳에서의 밥상이.
옥샘이 있는 곳이 물꼬지.
허니 이곳 밥상이 물꼬 밥상이라.
황태미역국에 매실장아찌를 무치고, 물꼬 묵은지를 볶고, 주인장네 밭에서 따온 풋호박을 볶고,
물꼬에 두면 그대로 상하겠는, 벌써 한 점씩 물러지는, 가져온 방울토마토와
바나나로 각각 오믈렛을 내고,
계곡을 앞에 놓은 마을 산과 마주해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벗이 사온 건빵을 간식으로 먹었다.
- 별사탕 줄까?
안에 별사탕 봉지가 따로 있었다.
- 싫어.
- 니 지금 별사탕 싫다 그랬나.
별사탕이 열 받았다. 별 바위만 좋아하고 지는 싫어한다고.
아, 어제 우리가 보았던 게 별바위였지.
‘큰 점봉산-작은 점봉산-망대암봉-별바위-만물산’을 건너다보며
만경대에 오래 앉았던 어제 오후였다.
읽거나 썼고,
늦은 오후에 마을 끝에서 산으로 들었다.
점봉산이 이어져있다.
날등을 타고 양서방 고개를 오르고 오른쪽으로 펼쳐진 고래골을 굽어보았다.
낮 5시 소금밭을 바로 위로 두고 길을 접고 내려왔다.
산에서는 그렇다. 딱 한 발만 더 가면 정산이어도 돌아서야 할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사고는 그럴 때 난다.
저녁을 먹고 오색 안터 형님을 만나다.
지난 6월 일정에서 얼굴을 익혔다.
그렇게 설악 아래 사는 이들과 연을 짓는다.
사람 사는 일이 결국 '만남'이라. 사람과 사물과 자신과.
1년간 몇 차례 오가며 바로 설악에 깃든 사람들이, 풍광이, 그리고 '내'가 책에 담길 것이다, 별일만 없다면.
마을에 하나 있는 구멍가게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객이라면 더 앉았을 수 없는 시간에
이미 마을 사람이 된 우리들이 곡주를 마셨다.
그 끝에 형님댁으로 가서 마신 마가목주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
스코틀랜드산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에 버금갈 만했다.
담고 6개월 지나 거르고 다시 6개월을 더 발효시킨다지.
36가지 중풍을 고칠 수 있다나.
어혈을 풀어주고 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한다.
대청봉 아래가 마가목 열매로 온통 붉다는데,
우리는 이번 걸음에 그 열매를 따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이불방의 썼던 이불을 빠는 세탁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고.
들어왔던 목수샘들이 민주지산을 오르고 내려왔다는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