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3.해날. 맑음 / 설악·4

조회 수 378 추천 수 0 2021.12.01 23:57:04


 

수행으로 아침을 열었다.

아침 8시 해가 떴다.

새벽 5시 일흔 두 남자가 대청봉을 향해 나서고,

대청봉에서 한계령을 다녀온 부부가 부산으로 떠나고,

우리는 오늘도 남았다.

여기는 대청봉 아래. 설악 나흘째.

 

더 누워있을라 했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주인장이 나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단다.

윗집과 이 집 사이에 난 골목에 작은 세수대야만 한 고양이 밥그릇을 한가운데 넣고

사료를 잔뜩 부어주었다.

그런데 마을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큰대문집 개란다. 어제 보았다. ‘봄이였다.

이 시간만 되면 온단다.

고양이 밥을 홀라당 먹고는 한다고.

그를 쫓고 있는데, 멀리서 주인이 개를 불렀다.

그래서였나 내게 경계를 푼 고양이들이 내가 아주 가까운 것도 아랑곳 않고

먹이를 먹으러 몰려들었다.

아홉 되는 고양이들이 머리를 박고 있었다.

아홉 마리던데요.”

새끼들도 있어. 다 숨어있어.”

 

이곳에서는 이곳에서의 밥상이.

옥샘이 있는 곳이 물꼬지.

허니 이곳 밥상이 물꼬 밥상이라.

황태미역국에 매실장아찌를 무치고, 물꼬 묵은지를 볶고, 주인장네 밭에서 따온 풋호박을 볶고,

물꼬에 두면 그대로 상하겠는, 벌써 한 점씩 물러지는, 가져온 방울토마토와

바나나로 각각 오믈렛을 내고,

계곡을 앞에 놓은 마을 산과 마주해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벗이 사온 건빵을 간식으로 먹었다.

- 별사탕 줄까?

안에 별사탕 봉지가 따로 있었다.

- 싫어.

- 니 지금 별사탕 싫다 그랬나.

별사탕이 열 받았다. 별 바위만 좋아하고 지는 싫어한다고.

, 어제 우리가 보았던 게 별바위였지.

큰 점봉산-작은 점봉산-망대암봉-별바위-만물산을 건너다보며

만경대에 오래 앉았던 어제 오후였다.

 

읽거나 썼고,

늦은 오후에 마을 끝에서 산으로 들었다.

점봉산이 이어져있다.

날등을 타고 양서방 고개를 오르고 오른쪽으로 펼쳐진 고래골을 굽어보았다.

5시 소금밭을 바로 위로 두고 길을 접고 내려왔다.

산에서는 그렇다. 딱 한 발만 더 가면 정산이어도 돌아서야 할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사고는 그럴 때 난다.

 

저녁을 먹고 오색 안터 형님을 만나다.

지난 6월 일정에서 얼굴을 익혔다.

그렇게 설악 아래 사는 이들과 연을 짓는다.

사람 사는 일이 결국 '만남'이라. 사람과 사물과 자신과.

1년간 몇 차례 오가며 바로 설악에 깃든 사람들이, 풍광이, 그리고 '내'가 책에 담길 것이다, 별일만 없다면.

마을에 하나 있는 구멍가게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객이라면 더 앉았을 수 없는 시간에

이미 마을 사람이 된 우리들이 곡주를 마셨다.

그 끝에 형님댁으로 가서 마신 마가목주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

스코틀랜드산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에 버금갈 만했다.

담고 6개월 지나 거르고 다시 6개월을 더 발효시킨다지.

36가지 중풍을 고칠 수 있다나.

어혈을 풀어주고 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한다.

대청봉 아래가 마가목 열매로 온통 붉다는데,

우리는 이번 걸음에 그 열매를 따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이불방의 썼던 이불을 빠는 세탁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고.

들어왔던 목수샘들이 민주지산을 오르고 내려왔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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