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5.불날. 비, 비 / 설악·6

조회 수 409 추천 수 0 2021.12.05 11:46:10


 

비가 내렸다.

간밤에도 내렸고, 아침에도 내렸다.

방이 더웠다. 뒤척였다. 아침에 두통도 심했다.

이른 아침 잠시 비그었다. 동쪽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무거웠다.

마을 돌담길을 걸었다. 나팔꽃들이 환했다.

노부부가 마주오고 있었다. 인사를 건넸더니, 일찍 일어나셨네요 하고 말을 보내왔다.

봉고차가 들어와 마을 할머니 한 분 태웠다. 어디 품을 팔러 가시나 보다.

물드는 작은 담쟁이덩굴과 공작초를 꺾어왔다.

가을을 방에 들이고 일행들과 수행했다.

나 있는 곳이 내 삶 자리, 내 삶은 이곳에서도 대해리 멧골 흐름과 다르지 않다.

연중기획 설악산행 2회차 일정 중.

설악은 오르는 산도 좋지만 보는 산도 좋다.

산에 오르자고도 했지만 마을에 살자고도 한 걸음이다.

비 덕분에 산 아래서 보낸다.

비 오는 날은 부침개라. 늦은 아침에는 김치부침개와 차를 놓고 앉았다.

 

예정대로라만 이른 새벽 공룡능선으로 가자던.

설악산지도를 놓고 공룡능선을(지도로) 올랐네.

상도문을 나서 설악소공원 설악동탐밤지원센터를 지나 신흥사 스쳐 비선대,

마등령 찍고 나항봉, 1275봉을 지나며 공룡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범봉과 천화대 천불동계곡을 보며 걷는다.

신선대를 지나 무너미고개, 희운각대피소 쪽으로 살짝 걸었다 다시 본 등산로로 회귀.

천불동계곡(천당폭포-양폭대피소-오련폭포-귀면암-비선대)으로 내려와 다시 비선대.

 

우산을 쓰고 설악동으로 가다. 비선대 가는 길. 왕복 6km.

빗길에도 설악산을 내려오는 이들을 더러 만났다.

새벽부터 셋이 출발했다 둘은 되돌아가고 혼자 대청봉을 밟고 원점회귀하는 이도 있었고,

한계령에서 출발해 여기 이른 이도 있었고,

금강굴까지만 다녀오는 이도 있었다.

말을 걸지 않은 더 여럿들도 있었다.

우리들이 오늘 마지막 비선대행 객인 듯싶었다.

(막 비선대를 돌아 나올 무렵 중년부부쯤으로 보이는 이들이 오긴 하더라.

비선대가 얼마나 남았냐 묻으며.)

 

왼편으로 계곡을 끼고 호젓하게 걷는 길은

잘 단장된 수목원 같은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는 저 길 끝에도 아주 오래 평지가 계속 될 것만 같은.

겨울에 늦게 산을 내려온 이들이 눈과 추위를 피해 불을 피웠음직한

바위처마가 있는 곳을 서성이기도 하고.

, 저기!”

누리장나무다. 꽃처럼 다섯 장으로 벌려진 빨간 꽃받침.

여름에 긴 타원형으로 다섯 장의 하얀꽃을 피우는 나무.

꽃이 지면 그 아래 남색으로 익은 열매를 감싸고 있던 꽃받침이 벌어져 이맘 때 저리 붉다.

그것이 꽃인 줄 알기도.

강원도에서 구린내 나무, 경상도에서는 누룬나무 깨타리나무,

전라도에서는 피나무 이아리나무.

향취나무 노나무 저나무 개똥나무 구릿대나무 누기개나무가 다 누리장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씻지 않은 개 냄새가 난다고 개나무라고도 한다지.

익은 열매로도 풋열매로도 옥색을 내는 천연염색료로 쓰는.

며칠 전 만경대 가던 길 주전골에서도 누리장나무 꽃받침이 예쁘기도 예뻤더라.

 

실제 하는 풍경인지 수채화인지 착각이 들게 하는 계곡 바위들.

다시 계곡 저편으로 다리를 건너며 계곡 이편으로 고개를 드는데,

적벽바위가 티아노사우러스 머리 모양 장엄하게 섰다.

공룡능선이 있는 이곳이니 공룡머리 같은 저 바위를 공룡바위라 이름해도 좋으리.

기회가 되면 국립공원관리소에다 제안을 해야겠네.

가랑비 내리는 설악산은 안개에 깊이 잠겼다.

그래서 이 풍경 저 풍경 다 떼어내고 가까이 있는 바위들이 확대경으로 보는 듯했던.

비선대 앞 계곡 다리 건너 탐방로 들머리 건물 처마 아래서

오롯이 우리만 이 산을 차지한 듯한.

철퍼덕 앉아 차를 마셨다.

소리꾼은 이런 물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계곡 한가운데서 판소리도 한 판.

저녁이 내리는 설악산이 우리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네.

 

가려 들면 안내소 굳게 닫친 문도 헤치고 공룡능선을 향했을 수도.

무모하기 어렵게 늙었거나

무모하지 않게 나이가 주는 지혜를 알게 되었거나

같이 가는 이들을 살핀 마음이었거나

그들을 두고도 혼자 다녀올 만도 했거나.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중이어도 되고 끝내 아니어도 되고.

지난 일정의 끝에 공룡능선을 접었고,

이번 일정 중심에 놓은 공룡능선을 접고,

다음에 가거나 끝끝내 못 가거나.

이번은 이번의 로 누리는.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역시 누가 동행하느냐가 또한 중요하지.

아무리 좋은 곳인들 맛난 것인들 불편한 마음이 인다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맛난가.

살뜰하게 다른 이들을 챙기는 동행자와

자신도 타인에게도 별 걸림이 없는(걸림이 왜 없겠는가. 그걸 녹여낼 줄 아는!) 벗이 동행하는

복을 누리는 여정이라.

이번 일정에 동행키로 한 남자샘 하나가 오지 못했다.

공룡능선 걷는 일이 자신의 꿈 하나라며 설악산행 때 꼭 불러 주십사 했던.

꿈으로 또 남았겠네.

그리고 고향에서 떠밀려나와 젊은 날을 잘 헤친 한 사람 삶의 여정을 들었다.

고맙다, 잘 살아나온 그대여!

고맙다, 한 생을 무사히 건너가고 있는 수고로운 우리 모두여!

 

대해리는 맑았다 하고, 세탁기 돌아가는 중.

고래방에서 샘들이 수행하며 썼던 이불, 그리고 아이들이 썼던 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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